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북한이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북교역을 재개하려는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KDI는 4일 발표한 ‘5·24 조치, 장성택의 처형 그리고 북한경제의 딜레마’ 보고서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남북 경제 교류를 중단한 5·24조치에 따른 북한의 대중국 자원수출의 증대는 장성택 처형의 빌미로 작용했다”며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북한경제는 앞으로도 대중국 자원수출의 확대와 경제 의존성 심화, 그에 따른 개혁 개방의 딜레마로부터 빠져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00년대 한국과 중국으로 대외 무역이 크게 확대되면서 1990년대 기근과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북한은 체제 유지에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면서 북중무역에서 항상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남북교역에서는 모래 등 자연 채취물과 각종 농수산물 수출을 통해 교역 흑자를 기록했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을 통해 상당한 달러를 확보 할 수 있었다. 남북교역과 북중무역이 상호 보완적으로 잘 구조화 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남북 경제 교류를 중단한 ‘5·24 조치’로 이런 무역 구조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5·24 조치로 북한의 대 한국 수출이 급감했지만 이 중 35%만이 대 중국 수출로 대체됐다. 그동안 북한이 한국에 수출하던 상품들은 중국이 수입하기 힘들거나 오히려 수출하는 상품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은 중국에 무연탄과 철광석 수출을 늘렸다. 2009년 2억5600만 달러를 기록하던 중국에 대한 북한의 무연탄 수출은 2010~2012년 3년동안 연 평균 9억100만 달러로 3배 이상 커졌고 철광석도 9400만 달러에서 2억5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북한이 무연탄과 철광석이라는 두 가지 상품을 중국에 확대 수출하는 방식으로 5·24 조치의 부정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문제는 무연탄과 철광석이 북한 에너지 공급과 기간산업을 가동시키는 기본 물자라는 점이다. 두 품목을 중국으로 많이 수출할수록 북한의 경제가 악화되는 딜레마에 빠지게됐다. 특히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무연탄과 철광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수출 단가 인하로 이어졌다. 일정 금액 이상의 수출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출 물량을 늘려야 해 갈수록 북한 경제의 고통이 커지는 것이다.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죄목의 하나로 ‘지하자원과 토지를 외국에 헐값으로 팔아먹은 매국행위’를 든 것도 이 때문이다. 5·24 조치로 인한 대중국 수출 확대가 북한의 경제적 고통을 가져왔고, 이것이 정치적인 권력투쟁의 도구로까지 활용됐다.

그러나 장성택의 처형에도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성은 더 심화 시킬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북한의 자원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북한의 교섭력이 크지 않고, 중국의 성장세 둔화로 인해 북한의 자원수출 여건 개선 시도를 중국이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KDI는 북한이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남북관계를 개선해 남북교역을 재개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관계개선 계기 모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군사적 공세도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석 KDI연구위원은 “북한은 스스로가 곤란한 처지에 놓일수록 한국에 유화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위협하고 굴복시켜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 하는데 매우 능수능란하다”며 “북한과의 긍정적인 관계개선의 계기를 모색해야 하겠지만, 북한의 예기치 못한 정치·군사적 공세의 가능성에도 충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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