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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자" 이산가족 작별상봉…오열·통곡·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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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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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뉴시스】박문호 기자 =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 마지막날인 25일 오전 북한 금강산 면회소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북측 상봉자들이 버스에 올라 남측가족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02.25. go2@newsis.com 2014-02-25

설계기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이 25일 작별상봉을 끝으로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60년 기다림의 한을 모두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2박3일간의 만남이었다.

이날 오전 9시10분부터 10시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작별상봉에서 북측 상봉 대상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은 그리운 가족들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늙어버린 형을 등에 업고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동생, 눈물을 흘리며 '고향의 봄'과, '가고파' 등을 함께 부르는 가족, "아이고 언니" , "형님 이제 마지막이에요, 우리는 울지말고 헤어지자, "아버지 다시 만나자", "누님 이제 언제보나요", "오라버니 건강하세요"라며 서로를 붙잡고 우는 이산가족들로 상봉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금강산호텔 연회장에 먼저 입장해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측 가족들은 마지막 상봉이란 생각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고 흐느끼며 북측 가족을 기다렸다. 북측 가족들이 들어오자 남측 가족들은 한걸음에 달려가 가족들을 맞이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김태운(81·여)씨를 만난 동생 김사분(75)씨는 언니 도착 전부터 눈물을 흘리며 "우리 64년만에 만나는 건데 이렇게 이별이래. 어떡하면 좋아. 밤에 잠이 안 와. 이제 어떡하지"라며 연신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남궁렬(87)씨를 만난 딸 남궁봉자씨는 "아버지 조금만 일찍 만났으면…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인) 5년만 일찍 만났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렬씨도 "조금만 일찍 만났으면 좋을걸. 내가 (네 엄마를) 기다렸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북한에서 낳은 아들이 다가와 "아버지 울지 말라우" 하며 궁렬씨를 다그치기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마지막으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거나 직접 쓴 손편지와 가족사진을 건네기도 했다.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던 행사 초반에 비해 작별상봉을 5분 앞두고 "북측 가족들 일어나셔서 밖에 있는 차량에 탑승하시면 되겠습니다"란 안내방송이 나오자 테이블 곳곳은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됐다.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정말로 다가왔음을 실감한 남북 이산가족들은 더욱 통곡했다.

남궁렬씨 부녀는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통곡했다. 딸은 아버지의 팔을 차마 놓지 못하고 붙잡기만 했다.

박재선(81)씨는 노란 갱지에 노래 4곡의 가사를 빼곡하게 적어와 그 중 한 곡인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불렀다. 어릴 때 즐겨 불렀던 노래다.

여동생 박재희(76·여)씨는 울음을 삼키며 노래를 부르는 오빠의 모습을 줄곧 바라봤다.

남동생 조원제(83)씨를 만난 남측 최고령자 이오순(96·여)씨는 동생이 작별 상봉장 자리에 앉자 "내 동생 이제 어쩌냐. 나 어떡하냐"라며 오열했다.

조원제씨의 여동생인 도순씨도 오빠에게 달려들며 품에 안겼다. 오빠는 여동생을 꼭 껴안았다. 도순씨는 이제 기약없는 이별을 앞둔 오빠에게 큰 절을 했다.

60여년 만에 만난 남동생들과 함께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던 조매숙씨는 마지막 소절에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내 동생아"라며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 오원근씨를 만난 여동생 오정분씨는 "오빠 오정분이 누구야, 오동근(남동생)은 누구야"라며 계속 확인했다. 원근씨가 "동생"이라고 답하자 "그래 오빠"라고 말하며 껴안았다.

원근씨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근데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자 동생 정분씨는 "오빠 여기 연회장이야"라며 초코파이, 초콜릿 등을 먹여주며 오빠를 챙겼다. 버스를 타러 나가기 전까지 정분씨는 "오빠, 동생들 잊어버리지 마"라며 꿋꿋하게 웃으면서 작별했다.

하지만 정분씨는 오빠가 연회장을 나가자마자 오열했다.
   
▲ 【금강산=뉴시스】박문호 기자 =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 이틀째인 24일 오후 북한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김권수(83.왼쪽 세번째)씨와 남측 동생 김종수(왼쪽 두번째), 김순님(오른쪽) 등 가족들이 팔로 하트모양을 그리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14.02.24. go2@newsis.com 2014-02-24

이날 행사장에서 마지막 작별상봉을 눈 앞에서 지켜보던 북측 보장성원과 접대원,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남북 취재진 등도 눈물을 훔치며 이산가족의 영원한 이별을 함께 슬퍼했다.

한 북측 관계자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자 그는 "그렇지요. 눈물 안 나면 조선사람 아니지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 가족들은 먼저 행사장을 떠나 버스에 탔다 . 남북 이산 가족들은 버스의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차마 놓지 못했다. 남측 가족들은 손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버스 주변은 통곡과 오열로 가득찼다.

리현우(83)씨를 만난 동생 이정우씨는 오빠가 탄 버스 창가로 뛰어가 "오빠 문 좀 열어봐"라고 소리치며 울음을 토했다.

북측 가족들이 안에서 창문을 열었고 오빠와 마지막 손을 잡은 여동생은 까치발을 들고 버스에 매달린 채 유리창 쪽으로 얼굴을 갖다대고 울었다. "오빠 건강해", "오빠"라는 말은 울음 속에 잠겼다.

북측 정지덕(83)씨는 남동생 정기영(71)씨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또 만나자"라고 외쳤다.

정기영씨는 "형님 꼭 건강하시오"라고 답하다 형이 버스에 오르자 큰 소리로 "아이고 우리 형님"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북측 최고령자인 박종성(88)씨는이별할 때가 되자 여동생들에게 "나랑 같이 가자. 나랑 같이 살자"며 손을 잡고 면회소 로비까지 걸어나왔다.

여동생 박종순씨는 버스에 탄 오빠가 창 밖으로 내민 손을 부여잡고 "오빠, 오빠, 우리 오빠, 나 오빠 없이 어떻게 살지 오빠"라며 오열했다.

종성씨도 연신 눈물을 훔치며 "동생들아 건강 잃지 마라. 건강하면 또 만난다"라고 말했다. 여동생들은 "우리 걱정 말고 오빠도 건강하세요. 통일되면 봅시다"라고 답했다.

네 남매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이내 버스가 출발하자 세 여동생들은 "나 어떻게 살아. 우리 오빠 보고싶어서 어떡해"며 오열했다.

북측 가족을 태운 버스는 떠난 뒤 남측 가족들은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 가족 357명은 오후 1시 금강산을 출발해 오후 5시30분께 강원도 속초에 도착할 예정이다.

지난 23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60여년 만에 헤어진 가족과 기쁨의 재회를 한 이들은 전날까지 개별상봉, 단체상봉, 공동중식 등 5차례, 10시간 만났다.

2차 상봉 종료로 지난 2010년 18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설계기 남북 이산가족 1·2차 상봉의 공식 일정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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