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 60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공자(孔子)가 60세를 “어떤 말도 순화해서 들을 수 있다”는 뜻의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은 진리에 대한 순응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성(理性)의 철학자 칸트가 “인간이 이성을 완전히 사용하게 되는 시기는 지혜의 관점에서는 대략 60대라고 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회갑(2월 16일)을 맞아 각종 축하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바깥에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압박이 드세지고 있는 만큼 내부의 단합을 고취하기 위해서라도 ‘장군님 60회 탄신’을 더욱 크고 호사스럽게 장식할 필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 축하전문이 쇄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북한언론의 고정메뉴로 등장한다.

▶그런데 묘한 것은 북한당국이 김정일 60회 생일을 절대 ‘회갑’이나 ‘환갑’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60 청춘, 90 환갑」이라고 한 적이 있지만 이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도 일반 북한주민들은 회갑을 인생의 가장 큰 경사로 여기고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다. 북한당국이 ‘회갑’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김정일의 후계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과거 김일성은 자신의 회갑이던 1972년에 당시 30세이던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31세다. 그러나 김정일로서는 지금 후계문제를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여러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음직하고, 때문에 ‘회갑’이라는 용어도 꺼리는 것이라고 본다면 억측일까.

▶김정일에게 가장 의미있는 회갑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아무래도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사람이 60세가 되면 자신이 남길 유산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면서 “지금이야말로 과거와 결별하고 북한주민들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야 할 때”라고 권고했다. “60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겨우 터득하자마자 죽어야 하다니 하고 안타깝다고 말하게 되는 시기”라는 칸트의 충고에까지 귀를 열 수만 있다면 그의 회갑은 비로소 ‘이순(耳順)’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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