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寅永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북 시각 및 정책이란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국은 좁히기 힘든 차이점과 갈등을 노출했다.

한·미 양국이 회담에서 서로 상대방의 대북 시각과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반(反) 테러전쟁에 동맹국으로서 적극 협력할 것을 다짐했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하면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거듭 제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WMD)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북측의 긍정적 변화도 희망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그는 대북 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여러 차례 강조한 김 대통령과는 달리, 한반도의 안정이 힘을 바탕으로 유지됨을 강조했고, 북한 지도층을 여전히 ‘악(惡)’으로 규정하면서 위험스런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로 미국과 우방 및 동맹국들을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감안한 듯한 유연성과 전술적 후퇴가 이번 부시의 방한에서 감지되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작년 3월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과 지난 1월 29일의 ‘악의 축’ 발언으로 인한 국내외의 비판을 진정시키기 위해 발언의 수위를 조정할 필요성을 느낀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일부 유연성을 보였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미·북간의 상호 적대감과 불신감은 매우 크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복잡한 국제관계를 선·악과 우·적의 2분법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바탕 위에서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모든 안보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려 하며, 미사일 방어 (MD)체계 추진과 국방비 증액 등을 위해서도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9·11사태로 인한 미국인의 깊은 상처와 분노, 부시 및 안보 보좌관들의 보수·강경 성향 등이 깔려있다. 이런 부시 행정부에 대해 북한 역시 강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어 북·미 대화나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미 관계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미국은 현재 알 카에다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음 공격 목표를 이라크로 잡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햇볕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원하는 한국은 미국의 대북 무력사용으로 인한 파국을 우려하고 있다.

또 한국에는 3만7000명의 주한 미군이 있고, 북한에 인접한 중국도 한반도 분쟁을 적극 방지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초강대국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내심 두려워하고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으며, 심각한 경제난에 처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수출을 저지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강한 결의와 북한의 완강한 자세로 인해 조속한 북·미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반대로 미국과 북한이 서로 처한 현실적 제약을 무시한 채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앞으로 미국은 대북 무력사용을 자제한 채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 및 수출을 중단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며, 북한 지도층이 스스로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북한도 ‘보상 없는 안보태세 해제’ 요구에 저항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미국과의 대화 기회를 포착하고 남북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김대중 정부로서는 시간에 쫓기는 심정이겠으나 현 상황에서의 햇볕정책과 남북 관계 노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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