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째인 20일 북한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의 민재각(95. 오른쪽)씨가 북측의 며느리를 만나고 있다. 2014.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째인 20일 북한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의 민재각(95. 오른쪽)씨가 북측의 며느리를 만나고 있다. 2014.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내가 죽더라도 니가 누나를 꼭 찾아라"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김명복 할아버지(66)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들고 20일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열리는 금강산을 찾았다.

김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와 함께 전쟁을 피해 내려와 누나 명자(68)씨와 헤어졌다.

'곧 볼 수 있겠지' 했는데 그렇게 64년이 흘렀다. 돌아가신 김 할아버지의 선친은 돌아가시기 직전 "내가 죽더라도 꼭 니 누나를 찾으라"고 말했다.

그 유언장을 들고 김 할아버지는 이날 '명자 누나'를 만났다.

두 남매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듯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64년전 서로의 모습이 지금의 얼굴에 스쳐갔을까. 남매는 이윽고 손을 맞잡고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손기호(91) 할아버지도 1·4후퇴때 북에 두고 온 딸 손인복씨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전쟁 중에도 수차례 남북을 왔다갔다 오가며 딸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다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젖도 떼지 못했던 딸을 손 할아버지는 64년이 지나서야 다시 안았다.

딸 인복씨는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며 아버지에게 안겼다.

남측 1차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김성윤(96) 할머니도 여동생 석려씨를 만났다. 김 할머니는 여동생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지만, 곧 안정을 되찾고 동생과 옛 이야기들을 나눴다.

또 금강산으로 향하기 전부터 특히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우려됐던 김섬경(91)할아버지는 구급차에서 딸 춘순(68)씨와 아들 진천(65)씨를 만났다.

김 할아버지는 전날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아들·딸과의 재회에 강한 의지를 보였었다.

이날 상봉에선 서로 모르고 지냈던 남북 양측의 가족이 각자 남북 양측에서 '열차 기관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남측 손기호(91세 왼쪽)씨가 북측의 딸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 2010년 10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2014.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20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남측 손기호(91세 왼쪽)씨가 북측의 딸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 2010년 10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2014.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북측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온 남측의 장 춘(81)씨는 동생 장화춘(73)씨에게 자신의 아들 기웅씨를 소개했다. 조카를 처음 본 북측의 화춘씨는 "너는 그쪽에서 무슨 일을 하니?"라고 물었다.

이에 기웅씨가 "열차 기관사"라고 대답하자, 화춘씨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화춘씨도 북측에서 47년동안 기관사로 일했기 때문이다.

조카 기웅씨는 작은 아버지에게 "제가 운전해서 또 올게요. 제가 기관사니까 열차타고 꼭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했다.

이날 상봉에선 북측에서 엉뚱한 가족이 나온 것으로 판단되는 등 어색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북측의 이복동생들을 만나러 온 최남순(65)씨는 북측의 이복동생들이 들고온 아버지의 생전 사진을 보고 "아무리 봐도 내 아버지가 아니다. 이복동생들도 우리쪽 식구와 닮지 않았다"며 양측이 다른 가족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북측 가족들도 "섭섭해서 어떡합니까"라고 사실상 양측이 다른 가족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최씨는 못내 아쉬운듯 "이렇게 만났으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상봉행사 끝날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말했다. 이에 북측 가족들도 "그렇게 하자"며 남은 상봉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날 상봉에선 우리측 상봉대상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 등 140명이 북측의 가족 178명을 만났다.

양측은 이날 오후 3시에 시작한 단체상봉에서 두시간여 동안 헤어진 혈육과 정을 나눴으며, 이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북측 주최로 열린 환영만찬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북 양측 1차 상봉단은 상봉 2일차인 오는 21일 오전 비공개로 외금강호텔에서 개별상봉을 실시한다. 이어 공동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다시 실내 상봉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1차 상봉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남측 상봉단은 고성을 거쳐 속초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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