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 외로움이 덜했을 거야.”

전시 납북자 가족인 최병관(67)씨는 20일 북녘 땅의 배다른 동생들이 건넨 사진속 가족사진을 보며 아버지를 향한 사부곡(思父曲)을 불렀다.

단체상봉장인 금강산 호텔에서 처음으로 만난 동생들, 그리고 최 씨에게 아버지는 서로를 이어주는 혈연의 끈이었다.

최 씨는 아버지가 남긴 북한땅의 혈육 최경희(55), 최병덕(46)씨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세월의 벽 따위는 이들 사이에 더 이상 놓여있지 않았다. 아버지와 헤어진 뒤 10대 시절 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에게 아버지의 얼굴은 흐릿하다. 하지만 그리움은 절절하다.

최씨는 동생들과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버지가 생전에 건강했는지, 제사는 받고 있는 지 동생들에게 물었고, 가족은 그렇게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최씨의 아버지는 전쟁의 난리통에 경기 화성으로 피난을 갔다 인민군에 잡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어머니가 재혼한 이후 10대 시절 큰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사전 인터뷰에서 “살아계실 때 만났으면…”이라며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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