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유엔 인권조사위원회(COI)가 낸 북한 인권실태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는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사회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인권 말살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책임이 큰 우리는 계속 보고만 있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 법안심사 소위는 19일에도 북한인권법을 논의했으나 여야 이견만 확인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5년부터 북한인권법안을 거의 매년 제출해왔다. 그러나 민주당 쪽이 북한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해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보지 못했다. 제출된 법안들은 17·18대 국회 종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다. 이번 19대 국회 들어서도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안 5건을 냈고, 민주당은 북한 지원에 초점을 맞춘 '북한민생인권법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법안들은 북한인권재단 설립, 북한 인권운동을 하는 국내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그렇게 하면 반북(反北) 단체 지원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10년째 똑같은 말싸움이다.

그러는 사이 북 주민들의 현실은 인권(人權)이라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악화돼 왔다. 얼마 전 대한변호사협회가 탈북자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북한에 살 때 '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62명이나 됐다.

유엔은 1997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2004년과 2006년엔 미국과 일본이 각각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우리 국회가 당장 법을 제정하더라도 유엔 결의안보다 17년, 미국 북한인권법보다 10년이나 뒤처진 것이다. 이렇게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죄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신년 회견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의사를 밝히고 당내에 태스크포스도 만들었다. 내부 논쟁이 불가피하겠지만 시간이 없다. 이번에도 법 제정에 실패한다면 비판은 민주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도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부분은 절충할 필요가 있다. 북 주민의 처참한 현실을 감안하면 여야의 입장은 종잇장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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