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조사위원회(COI)는 17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저질러져 왔으며, 국가기관들이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와 반체제 인사, 탈북 시도자 등을 상대로 저지른 인권침해와 외국인 납치는 '반(反)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수령(首領)과 국방위원회·국가보위부 등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해 개인적으로 형사 책임을 물을 것"을 유엔에 권고했다. '수령'이란 물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를 말한다. 조사위는 "북한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므로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을 반인도적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유엔이 북한 '반인도적 범죄자'들의 형사처벌 필요성을 거론한 건 처음이다. 북한 주민 보호 책임이 국제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세계가 북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북에 대한 조치가 당장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ICC 제소만 해도 안보리 결의 사항이어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동의(同意)가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북한 정권이 느낄 압박감은 상당할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얕잡아볼 수도 있다. 지금처럼 철통같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일족(一族) 몰살과 같은 폭압으로 짓누르면서 외부엔 핵무기·화학무기로 대항하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끝까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중국조차 차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의 유엔 보고서 한 권이 그때는 철퇴로 바뀌어 떨어질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북한 정권과 통일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북 정권이 주민을 한낱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되는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인격체(人格體)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북의 그런 변화가 없다면 통일 논의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압박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우리는 아직도 북한인권법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조사위 보고서는 사실 우리가 다 알면서도 잊거나 외면해온 내용이다. 우리 모두가 북 인권 조사 보고서를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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