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실의 南北대화 주도는 정책지속성·투명성에 문제 있어
'비방 중단' 民間엔 자율로 둬야
고위급 접촉 채널에만 의존 말고 시민·국제사회 연계 현실 고려해 실무적 해법 차분하게 마련해야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12일과 14일 개최된 남북 고위급 접촉 과정과 3개 항의 합의 내용은 대체로 무난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 사이에 사실상 핫라인이 구축되어 핵심 현안에 대해 진지하고 효율적인 대화와 협의가 이루어진 것도 일단은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임박한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어 다행이고 향후 남북 고위급 접촉 채널이 구축된 점도 평가할 만하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중단키로 한 합의와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합의를 번복하려 했던 점 등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이번에는 자기들이 통 크게 양보했다거나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를 일단 믿어보겠다는 북측의 반응 역시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어서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이번에 새롭게 구축된 남북 고위급 접촉 채널은 복잡한 절차나 공식적인 의전 없이 바로 핵심 의제를 논의할 수 있고, 수뇌부에 직보(直報)함으로써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더구나 북한과 같은 수령제(首領制)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재가를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우 다른 대표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한 결정이 가능하다. 이산가족 상봉 일정 결정 과정에서 일주일 이상 소요되던 때와 비교해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항들이 불과 이틀 만에 양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채널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북쪽과 사정이 다른 민주주의 정부 구조를 갖고 있다. 청와대는 정부 각 부처를 총괄하는 부서이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이다. 남북 간 접촉이나 회담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부서별 역할이 구분되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안보실에서 남북 접촉이나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정책의 지속성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정책이나 전략의 수립 및 조율이 주 업무인 청와대가 특수 관계에 있는 북측과 회담을 기획 추진하는 것은 이번처럼 긴급한 경우에만 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 간에 더욱 미묘하고 복잡한 정책 현안이 줄줄이 산적해 있다는 점에서 부서별 전문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민주정부로서는 최적이다.

남북 관계는 의제 그 자체도 매우 정치적이고 포괄적이다. 상호 비방 중상을 중단하자는 제의는 이미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명시되어 있는데 이 역시 북한과 우리 체제의 차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당과 국가의 공식 기관을 통해 우리 대통령이나 체제를 헐뜯고 비방하는 것과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민간인, 더구나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이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활동까지 통제하는 것은 현실에도 맞지 않고 전략적으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양측의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상대방을 비방 중상하는 것부터 자제하고, 민간 차원은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 당국이 합의하면 분단으로 파생된 모든 갈등과 현안 과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북쪽이라면 가능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미 국제사회와 시민사회 양측으로 깊숙이 그리고 광범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당국 간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그럼에도 북측과 만든 고위 채널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할 경우 남북 정상회담의 상시 개설이라는 부담과 함께 국내외 이익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낭비와 역풍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 오랜 갈등과 반목을 털어내고 새롭게 대화를 시작한 남북한은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관심사와 해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만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프레임 속에서 차분하고 꼼꼼하게 실무적 해법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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