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등을 차례로 만난 뒤 "미·중 양국이 북한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案)을 제시했다"며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앞으로 수일간 매우 진지하게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미·중은 지금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매우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의 구상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미·중은 그간 2008년 이후 중단된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놓고 외교적 협상을 벌여왔다. 6자회담을 다시 열려면 북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미국은 북이 과거 6자회담에서 약속했던 영변 핵 시설 가동 중단 같은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회담을 다시 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일단 6자회담부터 다시 열어 관련 이슈들을 다루자는 주장을 펴왔다. 중국이 이런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새 제안'을 내놨다. 미·중 모두가 이 제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 북의 행태를 보면 북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은 2005년 6자회담에서 핵 포기에 합의했고 그 대가로 경제 지원을 받았다. 그러고선 2006년부터 세 번이나 핵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은은 아예 '핵과 경제 발전 병진(竝進) 노선'을 내걸고 있다. 이런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번 6자회담에선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한·미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북에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은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키 위해서다. 이런 조치도 없이 6자회담을 열었다가 유엔의 대북 제재(制裁)만 느슨하게 만들어 북의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케리 장관은 "북이 6자회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도 않으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추가적 (제재)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 후 북이 비핵화에 협력하지 않으면 중국이 직접 나서서 북을 압박·제재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의 새 제안 역시 '북을 일단 믿어보자'는 과거 중국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벌써 "과거에도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했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가장 큰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6자회담 결과에 따라 중국의 국제 리더십도 적잖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핵 포기와 한반도 비핵화'에서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북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