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7년 만에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은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 기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은 앞서 20~25일 6일간 금강산에서 두 차례 상봉 행사를 갖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그대로 수용했다. 키리졸브 훈련이 24일부터 시작되니 북 주장대로라면 24~25일 이틀간 상봉은 못하게 된다.

키리졸브 훈련은 1994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는 방어 훈련이다. 21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훈련을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도적이다. 북도 동계(冬季) 훈련을 실시했다. 그런 북이 이러는 것을 보니 굳이 2월 말에 상봉을 하자고 날짜를 잡은 것 자체가 키리졸브 훈련 일정과 겹치게 한 다음에 훈련 중단을 압박하려는 계산이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이산가족들의 눈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 수석대표로 나온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접촉에서 이른바 '존엄(尊嚴) 모독' 중단도 요구했다고 한다. 북에서 '존엄'이란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말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은과 북 정권 핵심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 비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등을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모독하고 막말 비난을 퍼부어온 쪽은 북이다.

결국 북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국내 언론의 김정은 비판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북도 이제 자유민주 체제 아래서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북이 이러는 것은 간접적으로 우리 언론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북은 얼마 전 김정은과 그 일행이 어린아이들 사는 방에 구두를 신고 들어간 사진을 배포했다. 북이 시비를 거는 것은 우리 언론들이 그 장면을 비판한 직후다. 아이들의 인권을 모독한 행위를 비판한 것을 '존엄 모독'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장성택 처형 후 얼어붙어 있는 북한 간부들이 이런 요구를 통해 김정은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북이 2차 만남을 제안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14일 재개된다. 접촉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북의 일련의 행동은 '대화 공세'에 가깝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대로 북측 의도를 알 수 있고, 김정은 직계(直系) 라인인 국방위원회와 통일전선부 사람들과 직접 얘기할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대화의 불씨는 살려나가되, 접촉에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할 경우 북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도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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