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보통강 기슭에 자리한 '체육인 살림집'(주택). 사진-연합뉴스 제공
평양 보통강 기슭에 자리한 '체육인 살림집'(주택).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서 살아보니 북한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바로 가족문화였다.

물론 북한은 사회, 제도적 조건과 환경으로 봤을 때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우선 외식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다. 배급제 사회여서 누구에게나 하루 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문화가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공급질서는 지위에 따라 1일 공급, 3일 공급, 주 공급, 월 공급으로 체계화 돼 있어 문화 주도세력인 상위계층 또한 가족문화에 충실한 것도 주된 원인이 된다. 국영식당들이 있긴 하지만 질을 내세운 가격경쟁이 아니라 충성 유도를 위한 안내표 배급제도로 활용됐기 때문에 가족외식은 특이한 경우의 사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북한의 가족문화는 정권의 억압에서도 비롯된 반강제적인 문화이다. 북한은 전체주의 제도를 강요하는 차원에서 조직통제 범위 안에서 직장인 상호간에 연대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직장들에서 가족까지 동원되는 야유회나 체육회, 각종 써클모임들을 자주 벌인다. 그 가족동원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급제도에 있다. 전체 국토가 국유지인 북한에선 직장들마다 자체 부업농장을 갖고 있다. 거기에서 생산된 농작물들을 배급질서 연장선에서 후방공급 명의로 나누어주는데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부인들이 남편의 직장에 자주 출입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서로 안면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친분으로 발전하면 서로 자기 집에 초청하여 대접하는 직장가족문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기관 아파트이다. 사적 소유가 불법인 북한이어서 아파트도 기관 공급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직장에 출근해서나 퇴근해서도 인연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그런 사회구조를 이른바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 사회의 대가족으로 자처한다. 뿐만 아니라 인민반 생활에서도 공동체 운영방식의 동원과 세뇌가 체계화 돼 있어 혼자 잘 먹고 잘 사면 아파트 전체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사적 행위가 자유롭지 못한 북한이다. 그래서 가족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북한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속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온정주의이다. 어쩌다 자기 집에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그동안 신세졌던 고마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음식과 함께 친분을 나누려는 그 작은 마음들의 진솔함인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살다 보니 북한에 살아있는 가족문화가 먼 옛말처럼 돼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실수한 적이 여러 번 된다.

국정원 안가에서 1년 동안 조사를 마치고 내 아파트에 짐을 풀었던 그 첫 날 밤이었다. 나는 이사를 왔으니 이웃에게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깊은 밤에 옆집 문을 두드렸다. 20대 아가씨가 나왔다. 그녀가 사유를 묻기도 전에 나는 다짜고짜로 "이사왔다."고 말했다. "그래서요?". 이사 왔다는데 그래서라니? 내가 더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아가씨는 용건이 뭐냐고 다그쳐 물었다. 북한은 밥보다 더 후한 대접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 식사를 같이 하자구요"라고 말했다. 마치 변태라도 본 듯 기겁한 얼굴로 아가씨는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내가 그녀의 그 거친 반응을 다 이해하기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음식대접보다 그 음식을 만드는 정성이 더 값진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선 그 수고가 초대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더 미안할 만큼 외식문화가 너무 발달돼 있다. 싸고 맛있는 식당들이 어디에나 널려있어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되는 편의주의가 마음의 노력까지 게으르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물질주의와 경쟁사회의 구조가 개인 간에도 일종의 벽을 만들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가지게 된다. 아무튼 북한의 가족문화는 물질적 풍요는 없지만 대신 사람의 정으로 메우는 것이어서 더 진했을지도 모른다. 빈곤 속의 풍요, 그것이 바로 북한의 가족문화가 아닐까 싶다.

/출처 - 자유아시아방송 장진성∙탈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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