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 접촉은 남북 관계의 중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시기적으로 이번 접촉은 20~25일로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둔 시점에 열린다. 우리 측에서 김규현 청와대 NSC(국가안보실) 사무처장이, 북측에서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각각 수석 대표로 나서는 이번 접촉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이다. 남북 고위 당국자가 처음 머리를 맞댄 것이 오히려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남북은 상당 기간 얼굴을 맞대기도 힘든 대치(對峙)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은 북이 먼저 제의하고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북은 작년 6월에도 서울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갖자고 해놓고선 우리 측 수석 대표의 격(格)이 너무 낮다는 엉뚱한 트집을 잡아 회담을 무산시켰다. 당시 북측 수석 대표는 조평통 서기국 국장으로, 우리 측 수석 대표인 통일부 차관보다 결코 직급이 높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북은 줄곧 이 문제를 붙들고 늘어졌다. 결국 북은 작년 2월 북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하게 북한을 압박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회담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통일부는 "사전에 정해진 의제는 없으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원활한 진행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은 최근 들어 24일 시작되는 한·미 연례 군사훈련 키리졸브 등을 문제 삼아 '이산 상봉과 군사훈련'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식의 대남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이 이번 접촉에서 한·미 훈련과 이산 상봉을 연계하는 주장을 펴면서 우리 측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은 어떤 정치적 사안과 연계되어서는 안 될 인도적 사안이다. 또 남북 대화를 위해 한·미 훈련을 포기하라는 식의 북한 주장은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안보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이 이번 접촉에서 이산 상봉과 한·미 훈련을 연계해 남측을 압박할 때 모종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정부는 이번 접촉에서 대북 원칙 문제에선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데선 유연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북이 요구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북측이 우리 측 관광객 피살(被殺) 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만 하면 언제든 풀릴 수 있다. 6년 가까이 끌어온 이 현안을 이제 매듭지을 때가 됐다. 북이 정말 남북 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번 고위급 접촉은 북이 최근 잇달아 내놓은 '대남(對南) 중대 제안'의 속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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