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인들은 ‘평화의 스포츠’를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70년대 중국을 둘러쌌던 음침한 죽(죽)의 장막이 미국과의 핑퐁외교를 시작으로 걷혔다. 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전세계의 주목 속에 출범한 코리아 남북단일팀은 감동과 파란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탁구인들은 지금도 “분단 이후 남북이 지바에서 가장 뜨겁게 포옹하지 않았느냐”고 자랑한다.

지바 이후 9년. 남북 탁구가 다시 화합의 무대에서 만났다. 무대는 평양. 단일팀은 아니었지만 ‘숙적’의 입장은 더욱 아니었다. 28일 오후 3시 삼성전자의 평양체육관 전광판 증정식을 기념해 열린 삼성생명·모란봉의 친선탁구 경기는 91년 지바의 ‘작은 통일’을 떠올리게 했다.

지바 멤버로 지금도 스웨덴에서 활약 중인 북한 남자의 간판 김성희는 삼성생명의 신예 서동철을 2대0으로 간단히 요리했다. 전 국가대표 간판스타로 91년 코리아팀 막내였던 박해정은 북한 에이스 김현희와 맞붙어 0대2로 패배. 타고난 승부사 김현희는 친선경기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1만2000여 평양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남북 구별없이 선수들을 격려했다. 경기는 여자복식, 남자복식 모두 북한의 승리로 돌아갔다.

혼합복식 경기에선 상징적인 ‘단일팀’도 구성됐다. 모란봉 장경희(여)와 삼성 김건환이 ‘자주팀’을 구성, 삼성 장정연(여), 모란봉 오수영의 ‘통일팀’과 화합의 대결을 벌였다.

지바 우승주역인 현정화 한국마사회 코치는 제주도 전지훈련장에서 이 경기를 지켜봤다. 현 코치는 “지바 멤버인 (김)성희오빠를 제외하면 낯설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래도 감격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당시 단일팀 코치로 이날 MBC TV해설을 맡은 이유성 대한항공 감독은 “남북 탁구인 간의 우애는 형제와 같다”면서 “이번 친선경기가 제2의 코리아팀을 구성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동석기자 d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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