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이 대북·한미관계 등 한반도 문제의 앞날을 놓고 머리를 한창 맞대고 있는 한편에서 여의도 의사당은 「우리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몸싸움과 욕설·고함 끝에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사태의 발단이 통일·외교·안보분야의 대정부 질문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민망하다.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 논의가 결정적 국면을 통과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막상 국회는 내팽개친 채 「의원총회」만 무성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부시는 악의 화신」 「이회창은 악의 뿌리」라는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과 이를 물리적으로 저지한 한나라당에 의해 촉발돼 제2막, 3막으로 이어진 것이기는 하다. 이로 인해 집권당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이어 야당 단독국회가 진행되는 등 유례없는 사태를 목격하게 됐지만 그 바닥을 살펴보면 여야 모두 오로지 대선을 겨냥한 정쟁과 기세싸움의 도구로써 국회를 이용한 것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DJ의 세 아들」에 대한 공격에 대응해 집권측이 「이회창가(家) 3대」에 대한 비난을 동원한 것이며, 다음날 「김정일의 홍위병 정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겉으로는 「의원 발언에 대한 있을 수 없는 폭력사태」와 「우방국 원수에 대한 망언」을 여야가 서로 내세우며 흥분하고 있지만, 실은 각기 자신들의 수장인 대통령과 야당 총재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더욱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삼 지적해야 할 것은 대의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논의의 장(場)인 국회가 언제까지 이런 충성경쟁에 급급해하는 저급한 정쟁마당으로 방치되어야 하느냐이다. 집권당으로서는 한나라당의 「폭력의원」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한나라당도 「악의 화신」 발언 의원을 국회윤리위에 제소했다. 그런 절차를 밟았다면 이틀씩이나 국회를 거부할 필요 없이 즉시 등원해서 국정논의에 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차제에 상대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더 꺾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슨 고약한 발언이 있었다 해도 일단 「충성심」의 발로를 보여줬으면 회의는 제대로 해달라는 것이다. 욕하면 소리 한번 지르고 그대로 들어주면 된다. 그것 때문에 회의도 팽개치고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대드는 것은 시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성숙한 의정의 방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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