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신발 벗고… 김정은은 구두 신고….' 조선일보 5일자 A4면에 실린 북한 김정은 사진 기사의 제목이다. 최근 평양의 한 고아 보육 시설을 방문한 김정은이 구두를 신은 채 원아들 방에 들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장면이다. 하나같이 손에 필기구와 수첩을 들고 김정은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중·장년 수행원 6명도 모두 구두를 신고 있다. 서너 살밖에 돼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양말을 신은 채였다.

사람 사는 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는 것은 화급한 사고가 난 경우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사는 방이라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은 자신도 지난해 낳았다는 자기 아이 방에 구두를 신고 들어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라도 김정은 자식 방에 구두를 신고 들어갔다간 목숨이 붙어있을 수가 없는 게 북한이다. 김정은과 그 일행에게 그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구두는 벗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북한이 이 사진을 버젓이 공개한 사실이다. 북은 김정은 관련 사진은 철저히 검증해 내보낸다. 그런 일만 하는 전담 조직이 따로 있고,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도 이 사진을 내보낸 것은 김정은과 그 일행은 물론이고 이 사진을 검증하는 조직의 모든 구성원에게도 구두 신고 아이들 방에 들어간 그 일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사진 한 장이 북한 정권과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주민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모든 것을 다 증언(證言)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부터 가장 자주 강조하는 게 '인민 대중 제일주의'라고 한다. '인민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위한다'는 것이다.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북은 이 사진을 통해 김정은이 고아들까지 챙기는 자상한 지도자라고 선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이 보여준 것은 독재자의 구둣발에 짓밟힌 북한 주민들의 참담한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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