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의 한미 정상회담은 공개된 내용만으로 본다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차이를 더이상 예각화하지 않고 최대한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작년 3월 첫 양국정상의 만남에서 어색한 장면들이 표출됐던 것과 비교한다면 이번 회담에서 두 대통령이 파열음보다는 화음(和音)을 내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전통적 한미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한 대량살상무기 해결의 절실함에 공감하면서 이 문제를 북한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그러나 당연해보이는 회담 결과가 당연하게만 여겨지지 않는 사실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의 미묘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도라산 연설을 살펴보면 대북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차이가 상존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북한이 햇볕정책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에 자신이 매우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햇볕정책의 한계를 분명히 지적했다.

그는 또 김정일 정권의 억압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는 애정과 우려를 표시함으로써, 북한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접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의 이같은 인식과 접근법은, 북한정권에 대한 지원을 통해 북한의 정책변화와 주민의 삶의 질(質)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햇볕정책의 기본발상과는 상반된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통해 ‘악의 축’ 발언 이후 촉발된 일부 반미감정을 누그러뜨리려 애쓰면서도 자신의 대북정책 기본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명확히 천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미 양국이 이번에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확인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북정책의 목표를 북한정권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복지를 향상시키도록 유도하는 데 두고 있으며, 이러한 목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대북공조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양국이 이번 부시 방한을 통해 이러한 인식에 진정으로 공감했다면 앞으로 북한정권을 대화와 변화의 장(場)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책과 협상전술에서 상호 이해와 유연성을 발휘하기는 반드시 어렵지만은 않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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