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북한이 아·태지역의 유일한 안보포럼인 아세안지역포럼(ARF)에 가입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ARF는 1994년 7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의해 창설된 이래, 남사군도 (Spratly Islands)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간의 분쟁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예방외교 기구로서의 유용성을 인정받은 기구이다.

ARF는 예방외교의 목표를 신뢰구축, 예방외교, 문제해결이라는 3단계의 접근을 통해 실현하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ARF 가입을 환영하는 이유도 유사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와 장차의 남북한 통일협상이 ARF의 이와 같은 중재과정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다.

ARF에는 아세안의 10개 회원국 외에 미·중·러·일 등 한반도 문제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강대국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기에 더욱 그 유용성이 기대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ARF가 만족할 만한 유용성을 발휘할 것인가의 여부는 ARF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전통적 기본외교노선과 최근의 실용주의적 신(신)외교노선을 참고해 볼 때 북한은 ARF 가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제사회 특히 동남아에서 외교적 정통성 제고를 기대할 것이다.

둘째,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데 이어 단일경제블록(AFTA)을 형성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과 식량지원, 교역 투자를 확대하여 경제적 국익을 증진시키고자 할 것이다.

셋째, 아세안의 비동맹 중립노선과 북한의 반미·반제국주의 노선간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관철시키려는 군사안보적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ARF 가입에 대해 우리가 전적으로 박수만 치고 있을 입장만은 아니다.

북한이 ARF를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외교적 선전장으로 활용하고, 이로 인해 4자 회담의 위상과 정통성이 약화될 경우, 자칫 미·북 혹은 남북간 마찰이 발생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

반면 ARF의 유용성에 비춰 볼 때 북한의 ARF 가입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과정에 주는 기대 역시 크다.

첫째, UN에 이어 ARF에도 남한과 공동가입함으로써 북한은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하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인정케 된 결과가 되어 통일의 전단계인 남북한 평화공존 체제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둘째, 북한은 다자안보체제인 ARF의 책임있는 참여국이 됨으로써 종래의 테러국가 혹은 깡패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책임있고 신중한 행동을 하도록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게 되었다.

셋째,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ARF가 평화적 해결을 중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다자 레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탈냉전의 국제질서에서는 UN, ASEM 등 다자기구나 제도를 통한 국가간 협력이 증대되는 특징이 목격되는 만큼, 북한이 이러한 새로운 질서의 성격을 인식하여 ARF의 책임있는 일원이 된다면 북한의 ARF 가입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김 수 일 부산외대 국제경영지역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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