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재개(再開) 의사를 밝힌 뒤 열흘 가까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 측은 연일 북측에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할 실무접촉을 갖자고 촉구했지만 북은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그 대신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들이 지난 16일 내놓은 이른바 '중대 제안'을 선전하고 있다. 지난 30일 유엔 안보리에 이 제안을 문서로 제출했고, 주(駐)중국 북한 대사 등이 서방 언론과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군사 훈련을 중단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연일 "북남 관계의 전도(前途)는 남조선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측이 내놓은 중대 제안은 '1월 30일부터 상호 비방 중상 중단' '상호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 '핵 재난을 막기 위한 상호 조치' 등이다. 북이 정말 상호 비방 중단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대남 비방을 중단하면 된다. 북은 상호 군사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했지만 정작 북한군은 설 연휴 기간 내내 연례 동계 훈련을 실시했다. 이처럼 말과 행동이 다르니 북의 중대 제안은 이달 말 시작될 한·미 연례 합동 군사 훈련을 트집 잡기 위한 것 정도로밖에 볼 수 없다.

북이 정말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행사부터 조건 없이 성사시켜야 한다. 대부분 여든을 넘은 고령(高齡)의 이산가족들에겐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다. 북은 작년 9월에도 상봉 행사를 나흘 앞두고 갑자기 취소했고, 지금도 말만 꺼내놓고선 상봉에 필요한 실질적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반(反)인도적 행위다.

북이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다른 정치적 조건과 연계하지 않고 정례(定例) 상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나선다면 세계가 북한을 달리 볼 것이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다룰 국제 협상의 문도 열리게 된다. 북은 지금 남북 관계에서 시급하고 중대한 일들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중대 제안 선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 또 이산상봉을 무산시키면 남북 관계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북한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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