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최측근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임동원(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다.

그 역할은 사람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리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역대적(역대적)으로 그랬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이후락, 전두환 시절의 장세동, 노태우 시절의 서동권―모두 기관의 이름만 달랐지 지금의 국정원장들이었다.

국정원(또는 정보부, 안전기획부)은 글자 그대로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주기능으로 한 정보중추신경이다. 미국의 CIA, 구소련의 KGB, 영국의 MI5, 일본의 내각조사처,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이 대표적인 정보기관이다. 이들은 음지에서 일한다. 노출되거나 홍보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보수집기능을 저해한다. 그런데 왜 역대 집권자는 하필이면 북한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저들의 전복음모를 분쇄할 책무가 있는 정보기관의 장(장)을 북한에 대한 화해의 밀사(밀사)나 대북정책의 창구로 이용했을까. 적어도 그 기능면에서 보면 대단히 이율배반적이었다.

국정원장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어왔다. 하나는 정보기관의 장(장)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심복이라는 점이다. 비밀을 요하는 사항이기에 심복을 보냈고 또 북측에서도 남쪽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2인자를 요구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국정원장이 정권의 대북통로 역할을 하고 대통령의 밀사 노릇을 하게 됨에 따라 국정원의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것이다.

국정원 고위직에 근무했던 어느 인사는 본질의 문제를 제기했다. 즉 정보기관이 정책수행의 기능까지 맡게 될 때 그 기관이 수집하고 분석하고 배포하는 ‘정보’의 범위와 질(질)이 현저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보란 것은 그것이 어느 쪽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공정하게 사심없이 관리될 때 본래의 의미를 갖는다. 만일에 국정원이 6·15 이후 북한이 남한관계에서 대단히 해악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정보를 수집했음에도 이것이 국정원장의 대북역할을 깎아내리고 더 나아가 현 정권의 대북성과를 축소하는 쪽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그 정보를 왜곡하거나 묵살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정보수집 기능을 뛰어넘어 정책수행의 일선적 기능을 맡게 될 때 그 정권의 안보가 온전치 못했던 경우를 우리는 구소련의 KGB에서, 그리고 과거 역대정권의 ‘정보부’ ‘안기부’에서 발견한다.

국내정치를 다루고 남북대화를 주도하며 각종 행정에 간여하는 정보기관일수록 자기들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정보는 빼고 저 정보는 묵살하기 시작한다면 그 나라는 정보의 편식증(편식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그것은 나라의 안전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우리의 정보기능은 지금 많이 노출돼 있다.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국정원 관계자들이 누구누구인지 북한은 모조리 꿰뚫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북에서 누가 대남정보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한 국정원 소식통은 국정원과 국정원장이 정보기능이 아니라 정책기능을 담당함으로써 노출이 불가피하게 된 우리의 실정은 국정원의 대외적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며 외국의 우호적 정보기관들이 한국의 국정원과 정보를 교류하거나 공유하는 것을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북정책의 구체적 수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는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공존의 시기가 도래하고 대북교류와 협의가 장기화할 전망이라면 우리도 북한의 ‘아태평화위’처럼 대북문제를 전담할 별도의 창구를, 국정원이 아닌 것에서 마련하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차적 고려사항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정원에 몸담고 있는 특정인의 보좌가 필수적이라면 그를 국정원에서 떼어내 국정원으로 하여금 정보수집 기능에 전념토록 하고 정보의 편식이나 취사선택의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볼 때 남북화해라는 명제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주필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