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한 마리 연어가 되겠다”는 충성편지를 써 시중의 빈축을 샀던 민주당 송석찬 의원이 이번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의 화신’이라고 매도했다. 그는 작년 8월에는 당시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이는 미국의 음모”라며 “해임이 관철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성명까지 낸 인물이고 보면, 그의 막가는 언동과 자신의 말에 대해서도 책임질 줄 모르는 처신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이 동맹국의 국가원수에 대해, 그것도 그의 공식 방문 바로 전날 국회에서 적대국 간에나 사용할만한 원색적 용어로 매도한 것은 외교적 몰각이며 국회와 나라의 격(格)을 크게 떨어뜨린 수치다. 더구나 그가 동원한 '악의 화신' 표현은 북한 언론매체들이 사용하는 것 그대로다.

우리는 이번 일을 한 집권당 의원의 개인적 코미디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이번 발언은 집권당 소속의원으로서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소속의원의 대정부질문 내용은 당 차원에서 사전검토와 수위조절이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고 따라서 그의 발언이 민주당의 내부 분위기나 입장과 전혀 별개라고 볼 수만은 없는 정황인 것이다.

민주당은 사후에 그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하며, 당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것으로 민주당이 이번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송 의원의 발언저지 과정에서 생겨난 여야 충돌은 그것대로 따지되, 그의 대미발언 내용 자체는 별개의 문제로 당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송 의원의 ‘악의 화신’ 발언이 당의 입장과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와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송 의원에 대한 처리입장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송 의원의 대정부질문 내용 중 야당총재 비난부분에 신경을 쓰다가 문제발언을 사전에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면 정략에 함몰돼 국익을 해쳤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민주당 일각에서 송 의원식 대미인식에 내심 공감하는 어떤 기류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공식·비공식으로 쏟아져나온 민주당 내부의 대미 발언들을 보면 이러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송 의원 문제에 대한 더욱 단호하고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민주당은 ‘한 마리 연어’가 실추시킨 나라의 격(格)을 회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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