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햇볕정책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의 핵무장이라는 상황 변화에 맞춰 더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북 정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민주당에서 햇볕정책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聖域)이다. 그런데 김한길 대표 등 현 민주당 지도부가 햇볕정책 수정·보완을 들고나온 것이다.

민주당 소속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3선의 변재일 의원은 14일 "햇볕정책은 대북 교류·협력·지원을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북은 핵을 개발했다"며 "상황이 바뀐 이상 대북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엄중한 한반도 안보 환경에서 대북 정책을 놓고 여야가 계속 딴소리를 하고, 진보와 보수가 사사건건 다퉈서는 안 된다"며 "햇볕정책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안보와 대북 정책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도 13일 신년 회견에서 "북의 핵 개발은 이미 현실이 돼 있다"며 "새로운 대책, 국민 통합의 대북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치 선진국들은 정치·경제·사회 현안을 놓고 다투다가도 외교·안보 이슈에서는 국익을 위해 하나로 뭉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북한 문제가 여야, 좌우가 갈리는 이념과 갈등의 경계선이다. 북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도 정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냈고, 그때마다 병적인 음모론이 판을 쳤다. 이렇게 된 책임이 전적으로 민주당과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현 야권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의 기본 취지는 교류·협력을 통해 북을 대화와 개혁·개방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은 1·2차 핵실험과 거듭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북이 개혁·개방에 관심을 보였던 것도 아니다. 북의 현실은 햇볕정책이 내건 이상주의적 취지와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비롯한 현 야권은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데만 열을 올렸을 뿐 북에 책임을 묻거나 북을 비판하는 일조차 적대시해 왔다.

민주당 지도부가 '햇볕정책 검증'을 거론하자 벌써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새누리당을 돕는 이적(利敵) 행위라는 말까지 들린다. 그러나 민주당이 대북·안보 정책에서 야권 지지층을 넘어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각 정파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각자의 비전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면서도 국익을 위해서는 손잡는 초당적(超黨的) 협력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 대북 정책이 이념과 정략에서 자유로워져야만 제대로 된 통일 논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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