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률 높아지고
北 도로 등 인프라 수요 급증, 투자 통한 건강한 성장 가능
- 떠난 기업도 돌아올 것
국내외 기업 대거 北 투자 전망… 北주민 통일 최대 수혜자 될 듯
- 관건은 통일 비용 최소화
통일은 두 파트너가 추는 탱고, 천천히 격차 줄이며 이끌어야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은 통일 이후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월가(街)를 대표하는 국제 신용 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 미국의 대표적 금융회사인 시티그룹의 최고위급 인사들을 상대로 통일 후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그들은 "통일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저성장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막대한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남북 간의 경제력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통일은 새 도약 발판 될 것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신흥시장 및 세계거시경제 담당 총괄 대표는 "우리는 3~5년 후를 보고 투자하는데, 이 기간에 통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한 뒤 "만일 통일이 된다면 한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바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건스탠리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에 투자하고 있는 250억달러(약 28조원)의 투자 자산 운용을 책임지는 '큰손'이다. 그는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스트럭처(사회간접자본) 실태를 감안할 때 통일 이후 북한의 도로·철도·항만·주택 건설 등에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가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새로운 선순환 투자 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샤르마 대표는 또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이 달성될 경우 한국 경제는 평화배당금(국방비 투자를 줄임으로써 절약되는 비용)이란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이태경 기자
블룸버그·이태경 기자

시티그룹의 윌리엄 로즈 수석고문은 "통일은 저출산과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독재 정권에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이 통일된 한국 경제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존 체임버스 국가신용등급평가위원회 위원장은 통일 이후 북한이 새로운 제조업 생산기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많은 한국 기업이 높아진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면서 "통일이 되면 해외로 나간 많은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북한의 싼 인건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풍부한 노동력은 한국 경제 전반적으로 임금 하락 압력으로 작용해 남한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세계에서 가장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정권이란 위협이 사라질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로 국가 신용등급엔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경제 격차 줄이기가 관건

이들은 그러나 70년 가깝게 다른 체제로 유지돼온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단기적으로 엄청난 사회·경제적 혼란이 초래되고, 막대한 통일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독일 통일의 시행착오 분석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체임버스 위원장은 "서독은 통일 당시 미국·일본과 함께 세계 3대 경제 대국이었지만 막대한 통일 비용으로 인해 유럽의 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면서 "한국은 독일보다 분단 체제가 오래 지속돼 이질감이 심화된 데다 서독 같은 경제 대국도 아니기 때문에 통일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비용을 감당하려면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국가 부채 비율을 현 상태로 낮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로즈 고문은 "통일은 두 파트너가 탱고 춤을 추는 것과 같다. 한쪽이 아무리 이끌어도 상대방이 따라오지 못하면 허사"라며 "북한 주민이 통일 이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북한에 서서히 보급하는 것이 통일 비용을 낮추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샤르마 대표는 "막대한 통일 비용을 감안하면 한반도 통일은 차라리 최대한 서서히 진행될수록 좋다"면서 "통일 이전에 북한의 개방을 통해 남북한 간의 경제력 격차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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