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9일 전통문을 보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안한 이산가족 설 상봉 제안을 거부했다. 북은 "남측에서 전쟁 연습이 계속되고 곧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이 벌어진다"고 거부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 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한·미가 매년 2~3월에 실시해온 키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을 문제 삼아 이산 상봉 행사 제안을 거부한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다. 북한도 정말 이 훈련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진심은 '우리의 제안도 다 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이라고 한 구절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말한 '우리의 제안'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협의를 말한다. 북은 지난해 9월에도 우리 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 개최를 받아들이지 않자 양측이 사전 합의했던 이산가족 상봉 날짜를 나흘 앞두고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은 2008년 북한 군인이 우리 측 관광객을 총으로 사살했기 때문이다. 북은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해 놓고도 여태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재발 방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슬쩍 엮어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남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8800여명이다. 이 가운데 5만6000여명이 사망했고 남은 7만2000여명은 지금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다른 어떤 정치적 조건이 붙어선 안 되는 인도적 사안이다.

북은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하려는 반(反)인도적 발상을 접어야 한다. 북이 진정 금강산 관광을 원한다면 먼저 민간인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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