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1선에서 밀착호위하는 경호원들은 중앙당 호위부 6처 소속 베테랑 요원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2000년 6월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환송하는 김정일을 호위하는 경호원(좌)의 모습.


북한 김정일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거나 군부대·공장·기업소를 현지지도할 때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지근 거리에서 밀착 호위하는 경호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호위총국 요원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김정일 직속 친위대로 공식적으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 소속 호위병으로 불린다. 지난 10년간 호위부 6처에서 근무했던 탈북자 이영국(40)씨에 따르면 호위총국은 반체제·반정부 군사쿠데타를 차단하고 저지하는 부대(군단규모)이며 김정일의 신변안전은 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의 몫이다.

호위부 6처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 중앙당 청사 구내에 있으며 편제는 인민군과 같다. 책임자는 6처 처장으로 현역 인민군 중장(二星). 호위부 6처에 소속된 인원은 호위병(장교포함)만 1200여 명정도 되며 전체적으로 보면 1개 여단 급이다.

김정일이 한 번 움직이면 기본적으로 5선 경호가 펼쳐진다. 제1선은 5∼6명으로 김정일과 함께 움직이며 수행원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이들은 호위부 안에서 25∼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들로 대개 대좌(대령) 이상의 수뇌급이다. 제2선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안팎을 담당하며 200∼300명 정도의 호위부 요원이 투입된다.

제3선은 2선으로부터 반경 1km 안팎으로 국가안전보위부 행사과 요원들이, 제4선은 제3선으로부터 반경 1.5∼2km 안팎으로 인민보안성 행사과 요원들이 맡는다. 제5선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 합동 호위구역으로 범위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김정일이 지방의 특각을 찾을 때면 현지에 파견된 호위부 요원들이 1∼2선을 맡기도 한다. 제3선부터는 호위요원들이 김정일 얼굴을 보기 어렵다.

김정일이 군부대를 시찰하거나 공장·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를 통해 보도되는데 이때 나오는 사진이나 영상은 신문·방송 기자가 직접 찍은 것이 아니라 호위부 6처 산하 「5호문헌편집사」에서 제공한 것이다.

「5호문헌편집사」가 김정일 동정 자료 만들어 중앙당 선전선동부에 보내면 이곳에서 보도용으로 편집해 김정일의 직접 검토와 서명을 받아 신문·방송에 보내 보도토록 하는 것이다. 일례로 노동신문에 게재되는 김정일 현지지도 기사에는 「정치보도반」이라는 크레디트가 붙는데 이「정치보도반」이 바로 「5호문헌편집사」이다.

호위부 요원들의 일상은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업무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대단하다. 언제 어떤 상황(비상)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시 대기상태인데다 김정일 신변호위는 아무리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움직이면 길어야 2시간 전, 짧게는 45전에 통보된다. 밀착 호위하다 보면 이따금씩 김정일이 말을 걸어오기도 하는데 묻는 말에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면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호위부 요원들에게는 일체의 외출·외박과 휴가가 없다. 결혼한 군관(장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외박이 허용되는데 집이 부대 바로 곁의 창광거리 고층아파트에 있어 엄밀히 외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호위부 요원들은 1년에 한 번씩 전국의 고등중학교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중앙당 5과에서 직접 선발한다. 신체조건과 성분, 지능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데 특히 성분은 11촌까지 따지며 가족 가운데 고위층이 없는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 중에서 가려 뽑는다. 그래야 김정일에게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취지에서이다.

호위병들에 대한 대우는 일반 병사와 군관을 막론하고 최상급이다. 먹는 것을 포함한 물자공급은 중앙당 비서급에 준한다. 월급은 갓 입대한 전사가 57원으로 한 계급 진급할 때마다 10원씩 오른다. 인민군 전사가 5원, 호위총국 전사가 7원인 것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간다.

이들은 10년 이상 근무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제대할 수 있는데 사회에 나가면 당·보위부·보안성 등 권력기관에 배치된다. 직급은 초급간부인 지도원 이상이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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