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一은 대한민국 번영의 길… 과학기술로 梗塞 관계 풀어야
북한 生存 위한 분야부터 협력
北의 우수한 SW인력과 南의 하드웨어 기술 만난다면 세계적인 IT파워 형성할 것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조선일보가 2014년 조선일보의 길로 '통일이 미래다'를 내걸고, 독자들과 함께 한반도 통합, 남북통일의 새 길을 찾아 나선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통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며,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의 길을 여는 것이고, 대한민국 미래 번영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면서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신년사에서 "북남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는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 줄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정치색이 적은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관계는 그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 협력이 남북 관계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남북이 모두 나라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 발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두겠다고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현 정부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포함한 과학기술이다. 북한에서도 지난해 11월 13일에 과학자·기술자대회(2010년 3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열림)를 열고 경제발전을 목표로 "과학기술에 강성국가 건설의 운명이 달려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천명하였다. 그동안에는 남북 교류 사업으로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사업이 중점적으로 구상돼 왔지만, 이제는 남북한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 사업으로 우선순위를 두어 추진하는 것이 좋다.

동·서독이 통합되기 전후의 독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것이다. 독일은 1990년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인 1989년에 동·서독 과학정상회담을 개최해 과학기술계의 통합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고 한다. 또한 통일 즉시 동독 지역에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자 교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연구 인력 재배치도 했다. 이를 통하여 동·서독 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남북한 통일을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현재 과학기술계를 살펴보면 거의 준비가 없어 보인다. 남북한 과학기술 협력을 위해 다음과 같은 준비를 시작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첫째로,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연구 분야인 농업, 어업, 임업에서부터 남북한 과학기술 협력을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정치논리에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서는 정부보다는 민간 조직에서 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한의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북한의 국가과학원이 주도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장소는 북한의 평양과학기술대학이나 국가과학원이, 남한에서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고려해볼 수 있다.

둘째로,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에 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 남북한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상호 필요한 연구 주제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다면 남북한 과학기술 협력이 자연스럽게 진전될 것이다. 전쟁의 상징인 DMZ가 평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과학 연구의 요람이 된다면 남북한 통일에 대한 세계적인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북한의 과학기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사전 연구가 충분히 실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남한의 식량 자급률은 24%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어느 정도인지, 식량 자급률을 제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북한의 국가 통계 작성 기준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외에도 전력 등 에너지 수급 문제, 결핵 등 보건의료 문제, 생태계 보존 문제, 과학기술 인력 양성 문제, 과학기술 용어 통일 문제 등 북한과 접촉하기 전에 우리 나름대로 충분한 대비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학기술 협력의 모델이 필요하다. 현재로는 IT 분야의 협력 관계가 가장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하드웨어 중심의 IT 강국으로 알려져 있고, 북한은 소프트웨어 중심 IT 인력이 우수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북한의 소프트웨어 해킹 인력과 프로그래밍 인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한국의 IT 하드웨어 기술과 북한의 IT 소프트웨어 인력이 만나면 세계적인 IT 파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IT 분야의 과학기술 협력을 제안하면 북한도 응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