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외무장관들이 26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회동하고 국제무대에서 상호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되고 있는 화해협력 분위기를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은 이정빈 외무장관 이외에도 태국, 일본, 중국의 외무장관과 만났고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도 그를 만나기 위해 오늘 급히 방콕으로 날아왔다. 모두 북한과의 면담을 경쟁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세안 지역포럼이 이 지역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이며 북한이 바로 그 안보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운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참여가 바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과 반발로 일관해온 지금까지의 정책을 포기하고 개방과 개혁의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주변상황의 변화에 대한 전술적 대응일까.

물론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현재로서는 없다. 아니 해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성급한 짓일 뿐 아니라, 북한을 더욱 폐쇄의 길로 몰아갈 수도 있다. 어떤 변화일지라도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동시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포용정책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자세를 출발점으로 한다. 북한의 움직임을 냉철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긍정이나 부정을 넘어 현상의 이면에 잠겨있는 객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가치판단을 앞세우거나 과거의 고정관념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북한의 목표는 체제안정에 있다. 북한의 체제안정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경제회복이다. 최악의 기아사태는 넘겼지만 경제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체제불안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제회복을 위한 재원마련과 개혁개방이 초래할 체제위협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의 경제지원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한계를 누구보다 북한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적어도 100억달러 이상이 소요될 사회간접투자는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 특히 일본과의 수교협상을 잘 마무리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엄청난 자금이 북한으로서는 절실한 입장이다. 그런데 국제기구 가입이나 일본과의 수교협상이나 모두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을 하고 그 후속조치에 상당한 성의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둘째, 핵과 미사일로 표현되는 북한의 안보에 대한 보장 문제이다. 여기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다. 미국과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게 되면 테러국가의 명단에서 빠질 수 있다. 테러국가로 분류되어 있는 한 일본과의 수교나 국제기구의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도 테러국가로 지정된 국가에 자금을 제공할 수는 없다. 북한이 자신의 미사일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왔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우회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과시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직접 교섭에서 실패한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심리를 활용하면서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사일의 대리발사를 둘러싼 모호한 태도도 미국과의 협상에 서 더욱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을 부정적으로 폄하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적극 협력하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 성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에 빠져 너무 앞서감으로써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 정 종 욱 아주대 교수·전 주(주)중국대사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