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宗夏

얼마 전 정부가 미국과 회담하고 돌아오는 외무장관을 기내에서 경질함으로써 미국에 불만을 표하더니, 18일엔 여당 의원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국회 본회의에서 “부시는 악의 화신”이라며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논리를 펼쳤다.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의 대북 정책을 놓고 큰 논란에 빠져 있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따뜻한 햇볕을 비춰야 된다고 하는 데 반하여, 미국은 북한을 세계 3대 악동의 하나로 채찍으로 다스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한·미의 시각이 완전히 다르거나 한·미 공조가 이미 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다.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한·미 간에는 전부터 합의된 ‘역할분담’이 있다. 이에 의하면 남북간의 긴장완화, 교류증진 및 통일을 위한 대화는 한국 몫이고, 핵무기를 위시한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등 범세계적 안보 문제의 해결은 미국의 과제이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관련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주된 역할과 보조역할의 구분이 있을 뿐 한·미 간에 공조와 협의가 기본원칙으로 되어 있다. 분담된 역할의 성격상 미국은 강경하고 한국은 온건한 정책을 취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정석이다.

물론 미국은 온건 유인책도 쓸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 때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위협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중유를 제공하는 회유책을 썼다. 그러나 그 결과 협박자에게 몸값을 지불하는 전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북한의 계속적인 미사일 개발이라는 새로운 협박에 직면하여 미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공화당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당근보다는 채찍을 쓰겠다는 정책을 세웠다. 특히 9·11사태 이후 미국 내 여론은 당근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며, 미국 정부는 오히려 채찍도 큰 채찍을 써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심지어 러시아나 중국까지도 미국의 반테러 행동을 지지하고 있는 시기에,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 판매하는 것이 북한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반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백성이 굶주려 세계의 식량원조를 받고 있는 처지에 북한이 이러한 국제 안전을 교란하는 작업에 돈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미국의 논리에 우리가 반대할 명분이 없다.

단지 우리가 반대할 명분은, 우리의 대화 상대인 북한을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고 공격한다면 우리의 대화를 어렵게 하고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이 과연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것인가 하는 것과, 미국의 큰 채찍 정책이 우리의 햇볕정책을 흔드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사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탈냉전 이후 대미(對美) 시각이 바뀐 북한은 미국의 위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맞서서는 생존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수년간 북한의 외교를 관찰하여 볼 때 북한은 많은 한국인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현실주의적이고 외교 기량도 높아, 이렇게 위급한 상황하에서도 무엇인가 얻고 대미협상을 타결로 낙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 안 될 것은, 미국의 큰 채찍도 협상용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큰 채찍이 반드시 우리의 햇볕정책을 흔드는 것이라고 볼 것도 아니다. 미국이 큰 채찍을 잡으면 북한은 더욱 한국과의 관계를 잡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미국이 ‘큰 채찍’ 정책으로 임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대처는 미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우리 외교의 정석은 한국이 미국과 북한의 가운데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한 팀이 되어 북한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북한과는 한민족이고 미국은 어디까지나 외국이라고 하는 생각은 한반도의 군사 대치 상황을 극복한 이후 생각할 수 있는 명제이다.
/서강대 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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