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랜드 플랜 세우자

한반도 불확실성의 시대로… 左右가 합의한 對北원칙 절실
北이 관심 갖는 경제사업을 지렛대 삼아 개방 유도해야
청와대, 정치권과 북한 정보 공유하는 등 탈정치화 시급

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이후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기 힘든 '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김정은 1인 체제 강화로 북한은 체제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측 불허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 강화로 갈지, 경제 개혁·개방을 추진할지 불분명하고, 급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범정부적 차원에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그랜드 플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결·화해·경색 거쳐 불확실성 시대로

남북 관계와 대북 정책은 정권이 바뀌고 시대 상황이 변할 때마다 크게 출렁였다.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는 남북이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첨예하게 맞서는 '대결의 시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 지원과 남북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화해의 시대'로 바뀌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엔 북한의 핵개발과 군사적 도발로 인해 경제적 교류·협력이 끊기는 등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 이 같은 변화는 여야 간, 보수·진보 간 남남(南南) 갈등을 낳았다. 보수 진영은 상호주의를 강조했고, 진보 진영은 포용정책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우리의 대응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는 불확실성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데 급격한 상황 변화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장성택 사태로 북한의 비정상적인 봉건 왕조 체제와 인권 유린, 공포정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30세의 김정은이 핵무기를 쥐고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현실적 위협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정권 바뀌어도 변치 않을 원칙·독립기구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국가적 그랜드 플랜을 시급히 마련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북한에 의한 군사적 긴장 고조와 경제 개혁·개방 추진, 급변 사태 등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해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고, 평화의 원칙, 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피해 최소화의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선군(先軍) 정치나 급변 사태로 가지 않고 경제 개혁·개방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북한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경제사업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상황이 하루하루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대북 정세 파악 능력을 높이고 북한이 도발로 가지 않도록 관리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헌법 정신에 입각해 보수와 진보가 합의할 수 있는 대북 정책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했고,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대북 정책은 유연성을 가져야 하며, 과거처럼 일방적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국민 여론이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남북 화해 협력의 원칙이 무엇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을 대북 정책 원칙을 확립하고 남북 관계·통일 문제를 다룰 독립적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은 1969년 여야와 정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준독립적 형태의 '내독(內獨)관계성'을 만들어 통일 정책을 추진했다. 또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는 1982년 집권했을 때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가 추진한 '동방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

김병연 교수는 "그동안 대북 문제는 정치 선전·투쟁 도구로 활용된 경우가 많은데 탈정치화가 시급하다"며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대북 전문가 중심으로 대북·통일 정책을 논의하는 독립적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한범 연구위원은 "여야가 북한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떠들기보다는 청와대가 중심이 돼 정치권과 정보를 공유하고 남북 관계에 대한 비공개 영수회담도 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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