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불륜' 드러날까 두려워 北 최고 인기 여배우 총살한 김정일
모든 게 '수령 뜻대로'인 사회에서 온갖 죄 뒤집어쓰고 죽은 장성택도
인민 불만 누르고자 김정은이 고른… 알고 보면 충실한 手下였을 뿐

림일 탈북작가
림일 탈북작가
2년 전 이맘때 사망한 김정일은 소위 영화광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술영화에 수령 충성의 혁명 사상을 삽입해 전체 인민에게 학습시켰다. 20대 젊은 시절 예술영화촬영소에서 살다시피 한 김정일이 북한의 영화를 독점 지도하던 19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받았던 여배우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우인희이다.

예술영화 '세 동서' '한 자위단원의 운명' '목란 꽃'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당대 유명 인기 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전형적인 미인인 그녀의 남편은 20부작 북한 최고의 첩보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1978~1982)을 감독한 류호손이다.

너무도 아름다움이 죄였을까? 평양의 많은 남자가 그녀의 주변을 배회했고 우연히도 우인희는 재일 귀국자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이 추운 겨울날 차고의 승용차 안에서 잠들었고 히터에 질식돼 남자가 죽으면서 발각됐다. 남자의 부친은 노동당을 후원하던 일본의 갑부였는데 대노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우인희를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1980년 3월 평양시 하당리 사격장에 모인 2000명의 연예인 앞에서 최후를 예감한 그녀는 "나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서라!"고 외쳤으나 "배우 우인희는 부화방탕 죄로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는 요란한 방송 멘트에 묻혀버렸다. 곧 수십 발의 기관총성이 울렸고 그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허무하게도 우인희의 죄목은 '불륜'이다. 국가보위부 특별조사에서 토설한 그녀의 불륜 리스트에는 놀랍게도 김정일의 이름도 나왔다. 고민 끝에 역사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기 위해 김정일은 그 같은 잔인한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얼마 전 생존의 김정일을 오랫동안 보좌했던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반당, 반혁명, 부화방탕 등 온갖 죄목을 뒤집어쓰고 사형됐다. 세상이 놀랐다. 김정일의 유일한 여동생의 남편이 장성택이다. 그가 했던 모든 일이 수령을 음해하고 정권을 뒤집으려는 극악무도한 반역죄라는데 필자는 이해가 안 간다.

북한은 장성택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루는 고사하고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회가 아니다. 2000만 인민 모두가 수령의 의도대로 숨 쉬고 생활하는 집단이다. 장성택이 국가 간부로 수행한 국내 활동과 어떤 대외 사업도 모두 수령의 재가를 받아 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같은 3대 세습도 불가능했고, 지독한 수령 독재 체제 자체가 붕괴한 지 오래전 일이다.

배고픈 아이들의 학교 결석률이 높아지고, 굶어 죽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인민들은 멀건 죽을 먹으며 종일 라디오에서 울리는 수령 찬가를 들으며 죽은 김정일 동상과 기념관 건설에 동원돼 고된 노예노동을 한다. 일이 끝나면 온갖 정치 학습과 강연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도 그에 대한 불만은 감히 입 밖에도 못 낸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했던 첫 육성 인사말이 "다시는 우리 인민을 배곯게 하지 않겠다"인데 결국은 50년 전 "인민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거짓말과 꼭 같음을 확인한 지난 2년이었다.

어떻게든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누구든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게 장성택인데 이유가 있었다. 지난 1997년 식량난이 극심할 때 농업정책 오류의 문제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서관희 농업상(장관)과 2010년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지고 사형당한 박남기 노동당재정경제부장(부총리)을 본 인민들의 공포 억제 면역도 강해졌다. 그래서 더 큰 인물이 필요했고 결국은 그게 장성택이었다.

자신의 불륜이 두려워 인민이 사랑하는 아까운 여배우도 서슴없이 총살한 김정일이다. 산 사람도 부러울 만큼의 호화 궁전에 영면한 그가 세상에 하나뿐인 매제가 못난 아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처형되었음을 알면 그 기분이 과연 어떨까?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