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정일 사망 2년이 된 17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중앙추모대회를 열었다.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의 고모인 김경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등 장성택 처형 이후의 실세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가 권력을 승계할 때 좌우에서 옹위하듯 서 있었던 장성택과 이영호를 비롯한 당·군의 상당수 권력 실세들은 처형되거나 숙청돼 사라졌다. 추모대회 단상(壇上) 모습의 변화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이어졌던 김정은의 2년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핵(核)과 120만 병력, 노예 상태의 2300만 주민을 상속받은 김정은은 정권 초창기인 지난 2년간 예측 불가능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으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다 결국 북한 전체를 잔인한 공개 처형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김정은의 2년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스위스에 유학하며 본 것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북한에 적용하려는 무리한 정책으로 시종됐다. '스위스처럼 온 나라를 잔디밭으로 덮으라' '스위스에 있는 물놀이장을 그대로 만들라' '곧 자가용 시대가 오니 모든 집에 주차장을 지으라'는 식의 지시를 해왔다. 아무리 북한이라 해도 이런 지시에 지도부 내부나 주민들이 수긍할 리 없다. 결국 공개 처형과 같은 공포정치로 영(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은 집권 후 자신의 통치 기조로 핵과 경제의 병진(竝進) 노선을 발표했다. 핵폭탄도 갖고 경제도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망상(妄想)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만이 아니라 김 스스로가 경제 부흥과는 반대로만 갔다. 먹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된 북한에서 승마장과 스키장, 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과 같은 위락 시설을 짓는 데 바닥난 국고를 탕진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시설을 김정일 시대보다 두 배나 더 지었다. 그 반면 북한 내 도로는 지난 2년간 10㎞도 늘어나지 않았다. 경제특구 4곳과 개발구 14곳을 지정하고도 개혁·개방은 과거보다 더 적대시하는 모순된 정책을 펴왔다. 외자를 조금이나마 유치한 곳은 나진·선봉 한 곳뿐이다.

김정은 2년 동안 핵심 원조국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중국 리커창 총리는 최근 "북은 (도발로) 제 발등을 찍었다"고까지 했다. 장성택과 같은 이른바 친중파들을 제거한 이제는 김의 방중(訪中)이 언제 실현될지도 알 수 없게 됐다.

김정은은 정권의 유일한 버팀목인 군부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제 사람으로 물갈이하기 위해서라지만 군내 핵심 요직인 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작전국장을 각각 3차례나 바꾼 것은 군내에 불안과 불만의 씨앗을 심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철통같이 감시되는 북한 군부라고는 해도 겉으로만 복종하고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는 양봉음위(陽奉陰違)하는 장성들이 늘어나는 걸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느 한 곳 정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는 김정은 2년은 또 언제 어떤 대형 사태가 우리 앞에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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