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내놓은 판결문의 폭력성과 처형 방식의 잔인함에 세계가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인데 북에는 형식적인 법률 절차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판결문은 법률 문서로서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라는 등의 욕설과 비속어, 막말로 일관하고 있다. 판결문에서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고 한 것은 한때 2인자였던 장성택에게조차 기관총 난사 후 부서진 시신을 화염방사기로 불태웠을 것이란 추정을 낳고 있다. 북은 조직 폭력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린치(사형·私刑)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이 행태를 보란 듯이 세계에 공표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잔학 행위"라고 했다.

김정은이 고모부이기도 한 장성택과 그 측근들을 처형하고서 처음 한 일은 강원도 마식령에 건설 중인 스키장을 현지 지도한 것이다. 지금 북한은 숙청 피바람 이외에도 스스로 판결문에 밝힌 대로 '경제 실태와 인민 생활이 파국'에 가깝게 악화돼 있는 상태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지도자가 일반 주민들과는 관계도 없는 유흥 소비 시설에 국력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가 한마디로 '비정상'이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은 스키장만이 아니라 물놀이 공원, 승마장과 같은 비생산 시설 건설에도 돈을 쏟아 부었다. 이번 주중에는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던 미국 전 프로농구 선수 로드먼이 김정은의 초청을 받아 예정대로 평양을 또 방문한다고 한다. 정상적 국가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14일 "북한을 공포정치라고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고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즉결 처형하듯이 처형하는 것을 보면 아직 북한은 문명국가로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상태"라고 했다. 문 의원 말이 아니라도 그동안 북한이 비(非)정상, 반(反)문명 국가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이 드러났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2만명이 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다 그 증거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느새 북한 실상을 만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제는 잊어가고 있다. 문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선 북의 참상을 일부러 외면하고 북에 대한 고발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북한 정권에 대해 '합리적'이라거나 '말이 통한다' '통이 크다'는 등으로 평가한 정치인 전문가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북한인권법이 국회에 막혀 있는 것은 문 의원과 같은 사람들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 상황을 기록하고 대북 인권 활동을 지원하는 소극적인 내용일 뿐이다. 야권은 이조차 '북한 정권을 자극한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장성택 사태가 진정으로 북의 비정상·반문명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면 야권이 먼저 북을 정상화·문명화시킬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제 북 정권의 자체 변화가 무망(無望)하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장성택 판결문을 보면 북은 외부 세계의 평가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이 자신들이 저지르는 비정상·반문명 행태 하나하나에 심리적·물리적 압박을 느끼게 만들어 나가면 언젠가 북한 주민도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북한과 다를 게 없었던 소련도 그렇게 바뀌어 갔다. 모든 것은 우리가 정치적 견해차를 넘어 문명인으로서 정성과 국력을 모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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