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12일 국정원 소속 정보관의 국회·정당·언론사 상시 출입 폐지 방안이 포함된 국정원 자체 개혁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에 출석해 "(지난 대선 때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다시는 정치 개입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모든 국정원 직원이 정치 개입 금지 서약을 하고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항변할 수 있도록 감찰실 내에 '부당명령 심사청구 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북 심리전 활동을 규제할 '방어심리전 시행 규정'을 제정해 선거와 관련한 정치 댓글 사건이 재발(再發)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국정원 자체 개혁안의 핵심은 국정원법을 손대지 않으면서 현행 제도와 틀 안에서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정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일부 직원의 탈선(脫線)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직원 전체가 서약서를 쓰고 이런 일을 감시할 내부 기구를 두고 내규(內規)를 바꾸기만 하면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 개입 의혹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과거 정권들도 국정원이 정치 개입 논란에 휘말리면 정보관의 국회·정당 출입 폐지 방안을 내놨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국정원 조직 체질에 그런 일쯤은 해도 된다는 인식이 굳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걸 관리·감독 강화만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현행법으로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상관은 야당 대선 후보 비방 댓글을 달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직원들은 두말없이 이를 따랐다. 이런 국정원의 집단 심리와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법과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도 국정원의 탈(脫)정치 개혁이 뿌리 내리기 어렵다.

여야의 논의는 국정원의 이런 체질과 인식의 바탕에 무슨 문제가 깔려 있는가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야는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는 국정원 개혁안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는 법과 제도 개선, 관리·감독 강화와 더불어 국정원 내부 체질과 인식의 변화 방안이 모두 들어 있어야 한다.

국정원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다. 북한 권력 2인자 장성택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국정원이 왜 대북 역량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대공(對共) 수사권을 비롯한 국정원의 북한 관련 업무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원의 다른 분야에 대한 개혁이 강도 높게 이뤄져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