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이달 7일 공개한 ‘위대한 동지’ 중 제1부 ‘선군(先軍)의 한 길에서’이란 동영상에서 김정은 주변에 있던 장성택의 흔적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이 화면이 공개된 시점은 아직 장성택의 실각이 공식 보도되기 전이었던 만큼, 북한당국은 간부를 해임할 때 반드시 기록영상부터 삭제하는 식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이른바 ‘1호 영상 및 사진(김정일 김정은 등 최고지도자와 찍은 영상과 사진)’에서 그의 모습부터 삭제시킨 이유에 대해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은 “북한에서 가장 중범죄(重犯罪)로 분류되는 ‘반당 반혁명적’ 혐의를 씌웠기 때문이다”고 11일 보도했다.

‘데일리안’에 따르면 실제로 북한은 그동안 최고권력자의 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나 중대범죄로 처형된 고위인사는 기록영화나 각종 발행물에서 사진을 삭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 주석의 둘째 부인이었던 김성애이다. 김성애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이후에 각종 영상과 발행물에서 모습이 사라졌고 일부 책자에는 김성애의 사진만 흰색으로 비우기도 했다.

북한은 또 1969년 당시 김창봉 민족보위상과 허봉학 총정치국장을 숙청하고 그들이 나온 이른바 ‘1호 사진’에 까만 먹칠을 한 뒤 재배포한 적이 있다. 2010년에는 화폐개혁 실패로 숙청된 박남기 전 노동당 부장도 북한에서 공개되는 모든 사진과 영상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이처럼 북한에서 고위 간부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등 최고 지도자와 찍은 사진 ‘1호 영상’에서 삭제됐다는 것은 단순한 보직 해임이 아닌 ‘반당 반혁명적 행위’에 준하는 중죄를 지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일리안은 “실제로 북한에서 ‘1호 영상 및 사진’ 등 기록영화 삭제된다는 것은 북한 내 모든 출판물에서 해당 인물의 사진과 이름이 지워지는 것을 의미하며 각 마을의 출판물보급소에서 각 세대를 돌며 관련 출판물을 몰수하거나 일부 기록된 부분을 제거한다”고 전했다.

또 기록영화에서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본인은 물론 일가족 전체가 추방되거나 심지어 공개처형 또는 정치수용소에 붙잡혀 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북한당국의 행태를 볼 때 사실상 장성택의 복귀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북한은 ‘반당 반혁명적’ 행위와 같은 정치적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1호 영상(사진)’에서 지워버린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이어 “과거 최룡해 총정치국장이나 리영호 전 총참모장도 해임되면서 일부 사진에서 모습이 삭제된 적은 있지만 ‘1호 영상’에서 모조리 지워지지는 않았다”며 “특히 리영호의 경우, 당시 실각 이유가 정치적 문제보다는 신변 관련 문제였기 때문에 모든 ‘1호 사진’에서 삭제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장성택의 경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데도 ‘반당 반혁명적’ 이유로 숙청된 만큼 ‘1호 영상’에서 지워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며 사실상 모든 권력을 박탈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동안 남한 언론 등에서 ‘2인자’로 부각됐던 장성택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시키고 이를 여과없이 전달한 것은 일종의 김정은 식 ‘간부 길들이기’이다”고 분석했다.

소식통은 또 “아마 북한은 장성택 실각 이후 당분간 별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수개월 내 새로운 권력층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며 “장성택은 그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이미 북한에서 대대적인 권력 재편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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