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는 9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이 지난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참석 중 인민보안원 2명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을 공개했다. 김정은이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북한 권력 2인자로 알려져온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노동당에서 내쫓는 결정이 내려졌다. 장성택 체포 장면은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독재가 주민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는 이런 공포 통치 수단을 통해 이뤄졌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20세기 전반기 소련을 피로 물들였던 독재자 스탈린도 이런 수법까지 쓰진 않았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의 죄(罪)는 20가지가 넘는다. 북한은 "장성택 일당은 반당(反黨)·반(反)혁명적 종파 행위를 감행하고 강성 국가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장의 세력을 '종파(宗派)주의'로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일당이 부정부패를 일삼았다"면서 "장성택은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마약을 쓰고 다른 나라에 병치료를 가 있는 기간에도 도박장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북이 나열한 장의 죄상을 보면 장은 이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선 공개 처형을 비롯한 지금보다 더 처참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서른 살 김정은과 예순일곱 살 장성택은 처조카·고모부 사이다. 그런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지 2년 만에 자기보다 서른일곱 살 많은 고모부를 쫓아내면서 여성 편력과 마약·도박 문제까지 들고나왔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도 권력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등장한 친삼촌 김영주를 가차 없이 제거해 버렸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이런 공포 정치의 비법을 전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3대 왕조에선 김일성부터 내려오는 이른바 '백두산 혈통' 외에는 다 곁가지일 뿐이다. 장성택과 김영주의 운명이 이럴진대 북한에서 어느 누가 자기 앞날을 자신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지금도 북을 떠받드는 우리 내부 일부 세력이 장성택이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은 그간 친(親)중국·개방 성향의 인물로 평가돼 왔다. 장이 실제 그런 노선을 주장하다 실각했을 경우 북한의 개혁·개방은 크게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김정은이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자신감에서 장성택 숙청을 감행한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이런 충격 수단에 기대야 할 만큼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장성택 제거 사태'는 북한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나라인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2년 전 김정일 급사(急死) 후 김정은이 장성택과 함께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 정부 기관과 북한 전문가 누구도 지금과 같은 장성택의 말로(末路)를 예상하지 못했다. 김정은은 언제든 한반도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 정책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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