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3일 국회에 "(북한 권력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이 실각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장성택의 최측근인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11월 중순 공개 처형됐고, 이 사실을 군 내부에 공지했다"며 "이후 장성택이 모습을 감췄다"고 말했다.

장성택 실각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는 김정은의 후견인이자 북한 권력 2인자로 평가돼온 인물이다. 김정은의 고모이자 죽은 김정일의 친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생전에 유일한 핏줄인 김경희를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장성택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쓰러졌을 때 비상사태를 수습하는 핵심 역할을 했고 2011년 말 김정일 급사(急死) 후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은 과거에도 두 차례가량 권력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자기 사람을 챙기고 위세를 부리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야심이 큰 장성택을 경계했지만 결국 장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믿을 것은 핏줄밖에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정일-정은 3대(代)로 이어진 김씨 왕조는 자신들을 '백두 혈통'이라 부르며 북한 전체가 떠받들도록 강요해 왔다. 그러나 올해 서른인 조카 김정은이 집권 2년 만에 자신보다 37세 많은 고모부 장성택을 작심하고 내친 것이라면 과거 장이 겪었던 실각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일 수 있다.

장의 실각 여부는 북한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중국식 개혁에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올해 취한 일련의 부분적 경제 개혁·개방 조치들이 사실은 '장성택 작품'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 권력의 속성상 장이 복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장성택-김경희 세력의 파멸이라면 북한은 김정은 1인 독재 체제가 더 강화되느냐, 아니면 권력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장은 2008년부터 공안·사법기관을 총괄하는 노동당 행정부장을 맡아 왔고, 주(駐)중국 북한 대사인 지재룡을 비롯한 인맥이 권력 요직에 포진해 있다. 북한군 내에도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장성택 개인이 아니라 그간 김정일 권력을 지탱해 온 구(舊)세력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아무리 철통같은 감시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 권력 내부라 해도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든 저항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군부가 다시 전면에 나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같은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우리로서는 어느 쪽이든 민감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북한 권력 내부에서 누가 어떤 세력과 손을 잡고 '장성택 세력' 제거에 앞장섰는가를 비롯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구체적 정보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예측할 수 없는 북한 내부 상황을 예측해야만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숙명이다.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국정원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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