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보다 못하다는 느낌, 생각보다 도시가 더럽다는 느낌,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08년 간첩 혐의로 붙잡혀 5년간 복역한 뒤 지난 7월 출소한 원정화(40·사진)씨는 한국 첫 침투 당시 느꼈던 ‘대한민국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신동아가 25일 보도했다.

원씨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아 지내고 있다. 며칠에 한 번씩 경찰에 가서 보호관찰 조사를 받는다. 혹시 모를 테러 가능성 때문”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입국 당시 배 속에 있던 아이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잘 컸다고 했다. 그는 탈북자로 위장해 쉽게 입국하기 위해 중국에서 만난 한국 남성을 이용해 일부러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

신동아에 따르면, 원씨는 체포 직후 완전히 전향했다. 그는 “체포 직후 북한이 내놓은 입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청춘을 다 바쳐 조국을 위해 일했는데, 조국은 나를 버렸다”고 했다. “당시 북한이 내놓은 입장은 입에 담기도 싫다”고도 했다.

원씨 체포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원정화는 나라와 인민의 반역자이며 돈과 재물을 탐내고 협잡에 미친 인간추물이다. 남조선이 이런 여인한테 간첩 모자를 씌우는 것은 완전히 음모이며 이런 거짓말을 꾸며내고 또 이를 조선 국가안전보위부와 연결시키는 것은 조선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모독”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었다.
 

    원정화, "처음 본 서울, 평양보다 못해보였다"
 
 

검찰과 경찰,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가정보원은 탈북여성이라던 원씨가 대북무역을 하고 군 장교들과 교제하는 점을 의심, 2005년부터 3년간 내사를 벌인 끝에 구속기소했었다.

그는 체포되기 전까지 탈북자 신분으로 군부대를 돌며 여러 명의 군 장교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에 대해 “많이 만났다. 하지만 다 일로 만난 것”이라며 “언론 보도처럼 같이 자고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원씨는 또 “정말 사랑해서 만난 사람은 강원도 OO사단에서 만난 A대위뿐이었다. A를 만나기 전에 B소령도 만났지만, 그 사람은 그냥 필요해서 만난 사람이었고. 그 외 다른 사람들과는 성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었다”고 했다.

원씨보다 7세 연하였던 A 대위는 계속 결혼을 요구하다가 ‘내가 간첩이면 어떻게 할 거냐’는 원씨의 말에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원씨를 신고하지 않은 죄, 탈북자 출신 군 안보강사의 명단을 제공한(간첩방조) 죄, 2007년 7월 원씨가 재중 보위부에 보고한 서류를 폐기하는 것을 도운(편의제공) 죄 등으로 원씨와 함께 구속됐다.

A씨는 감옥에 간 뒤에도 원씨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원씨의 사생활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연락이 끊어졌다고 원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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