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휴대전화가 확산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미국의 통화 내용 자동 추적 프로그램을 밀수입, 체제 위협적인 단어를 입에 담는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동아일보가 26일 보도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라디오 단파방송인 북한개혁방송의 김승철 대표는 “복수의 탈북자들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휴대전화 추적 프로그램이 ‘암살’ ‘탈출’ 등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단어들을 자동으로 걸러내며, 그 결과는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에 해당)로 바로 넘겨진다”고 동아일보에 말했다. 탈북자 박모씨도 “2012년 3월 보위부 고위 간부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손전화(휴대전화)상으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나쁜말 도청기’란 추적 프로그램 장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나쁜말 도청기’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통신감청망 ‘에셜론’과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이다. NSA의 경우, ‘테러’ ‘폭발물’ 같은 단어가 들어간 전화 내용을 도청하면 발신자를 일단 추적 대상에 올리고 신상정보, 위치, 자주 연락하는 사람의 명단을 파악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 보위부도 ‘김정은 암살’, ‘탈출’, ‘폭발’ 등과 같이 체제를 위협하는 단어가 들어간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 프로그램에 의해 감지되면 해당 발신자를 본격 감시하기 시작한다. 결정적 증거가 잡히면 발신자를 바로 체포한다. 박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당 고위 간부도 잘 모른다”며 “보위부가 일반 주민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감시도 함께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추적 프로그램은 북한 전국 도(道)별 보위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휴대전화 자동 추적 프로그램까지 가동하고 있는 것은 북한 내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총 230만대를 넘어서면서, 휴대전화 도입 초기처럼 모든 통화 내용을 도청하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탈북자 이모 씨는 “올 7월경 보위부 내에 ‘휴대전화 통화 내용 추적 전담 부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이 아닌 중국산 피처폰을 사용하고 있고, 북한의 이동통신업체 고려링크에서 발행하는 ‘선불카드’를 사용해 통화하고 있다. 선불카드는 장당 북한 돈으로 1120원(우리 돈 약 9140원)으로 한 장을 사면 200분 정도 통화할 수 있다.

북한개혁방송에 따르면, 평양의 일부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휴대전화가 없으면 ‘왕따’가 되고, 결혼 선물이나 뇌물로도 인기가 높다고 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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