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번 동아시아 3국 순방, 특히 한국 방문이 갖는 의미는 무겁고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세계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 있어서도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변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대북문제를 놓고 국내외에서 이번처럼 우여곡절과 논란을 거친 경우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부시 방한이 갖는 상황의 중요성과 미묘함을 한층 더 짙게 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인식과 정책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고 있는 미국의 달라진 관점과 상당한 편차를 갖는 것이 사실이고, 부시의 방한은 한·미간의 이 같은 어긋남이 현재화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때문에 우리는 부시 방한을 통해 양국이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 조율작업의 차원을 넘어 북한과 한반도 상황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부시 대통령은 짧은 방한기간이지만 한반도 상황을 직접 많이 보고 한국민의 소리를 넓고 깊게 듣는 '현장체험'을 풍부히 가진 뒤 자신의 대북정책을 보완, 완성해 나가기를 주문하고 싶다. 현 정부 역시 미국측을 설득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달라진 세계전략과 입장을 대국적 견지에서 이해하려는 토대 위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현 정부는 북한정권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북문제를 둘러싼 한·미 정부간의 이견은 서로가 이미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일·중 3국 순방에 오르기 전 해당국 언론들과의 회견을 통해 일부 비판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대처 방식을 거듭 표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양국 정상회담은 이미 드러난 이견을 확인하고 증폭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이견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직한 양국공조와 생산적인 역할분담이 긴요함을 절감하는 대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북한과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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