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가극의 특징

가극은 생활을 음악-극적으로 반영하는 종합예술, 오페라이다. 북한에서 새로 만든 용어가 아니라 오페라라는 서양 용어가 보편화되기 이전부터 음악극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특히 혁명가극은 정치성이 짙은 내용을 형상화한 문학, 음악, 무용, 배경미술의 종합예술로서 북한식 오페라이다. 북한에서 가극은 종합적인 공연예술로 북한의 대표적인 예술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30년대 오가자에서 김일성의 지도에 의해 처음 공연하였던 것에서 가극예술의 기원을 찾는다.

해방 후 북한에서 꾸준히 가극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김정일의 지도에 의해 <피바다>로 대표되는 '가극혁명'이 이루어졌다.

김정일의 지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가극 혁명은 <피바다>의 창작 과정에서 그 모델을 완성하면서 이후 모든 가극 창작의 기준이 되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가극혁명이 완성됐다고 하겠다.

<피바다>식 가극

김정일은 <피바다>를 비롯한 북한의 5대 혁명가극에 대한 창작방법론을 정리한 '가극예술에 대하여'에서 <피바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우리는 혁명가극 <피바다>를 창작하여 공연함으로써 지난날의 가극과 근본적으로 다른 가극 <피바다>식 가극이 태어났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극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김정일, <가극혁명에 대하여>, p.1)

혁명가극 <피바다>는 북한에서 진행한 가극혁명의 결과물이자 혁명가극의 상징물이 되었고, 이후의 가극 작품에는 <피바다>식 혁명가극이란 장르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극을 만들기 위해 기존 오페라의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제시된 방침은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것이었다.

<피바다>식 가극은 가극의 대중성, 민족적 특성, 통속성 획득을 그 목표로 한다. 그 특징으로는 전래의 창극을 바탕으로 고전이나 설화 소재를 극복하여 사회주의 현실을 새로운 소재로 삼고, 음악적으로는 판소리의 낡은 폐해를 제거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식 가극을 바탕으로 서양악기와 개량 국악기에 최신 전자악기까지 섞은 배합 관현악, 주체적 창법으로 다듬은 연주와 가창의 관행을 만들었다.

가극이 혁명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인간의 참된 생활 묘사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따라 가능했다고 주장된다. 혁명가극은 음악ㆍ무용ㆍ연극 등이 종합되었다는 점에서 악극이나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주체사상 계몽과 정치적 선동선전을 위해 예술성보다는 규모와 무대를 중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단조로운 곡조를 계속 반복하는 '절가'와 무대 뒤에서 부르는 노래인 '방창'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극 작품

피바다식 가극의 대표작으로는 <피바다>(1971), <당의 참된 딸>(1971), <꽃 파는 처녀>(1972), <밀림아 이야기하라>(1972), <금강산의 노래>(1973) 등 5대 혁명가극이 있고, 이 밖에 1974년에 만들어진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 유명하다.

이 가극들의 내용상의 특징은 항일투쟁이나 반봉건·반미, 그리고 노동에 대한 찬양을 담고 있으며, 김일성의 유일사상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1) <피바다>(1971)
원제가 <혈해>인 이 작품은 7장 4경으로 구성돼 있으며 1930년대의 동명 혁명연극을 1971년 가극으로 옮긴 것으로서 모든 혁명가극 중에서 가장 먼저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혁명가극을 대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백두산 근처의 마을로 이사가 자식들을 항일혁명투사로 키우고 뒷받침하며, 자신도 항일혁명투쟁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가극에서는 극중인물들이 주고받는 종래의 대화창을 정형시형식의 평이한 가사로 만들고 거기에 아름답고 유순한 민족적인 선율을 밀착시켜 절가로 전환시킴으로써 가극의 노래를 명곡으로 일관시키고 표현기능을 높였으며 통속적 정서로 대중을 겨냥하였다.

절가들을 독창, 중창, 합창, 방창 등 여러 가지 음악형식과 수법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그것이 때로는 시대의 목소리로, 등장인물 상호 간의 소통 수단으로, 때로는 인물들의 성격과 정신세계를 부각시키는 도구로 쓰인다.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방창을 새롭게 독창적으로 활용한 것은 중요하다.

이는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부각시키고 사건의 전후 정황을 설명하면서 여러 가지 극작술의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독특한 색깔과 다양한 형식으로 노래의 표현적 기능을 최대한 높여줌으로써 주인공의 성격발전과 극적 형상화에 기여한다.

작품은 김정일의 지도 아래 1971년에 제작되었다. 이후 20여년 동안 북한의 각 지방과 해외에서 1300여 회에 걸쳐 공연됐고 250여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혁명적인 가극 건설에 관한 방침을 그대로 구현한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2) <꽃 파는 처녀> (1972)
김일성이 1930년에 창작한 것을 1972년 만수대예술단이 재창작하였다. 이 가극은 서경, 7장, 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피바다>식 가극의 창작 원칙을 잘 구현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한다. 절가를 기본으로 하여 방창·독창·중창·대중창·합창·관현악 등으로 이루어진 음악적 측면과 무용·무대미술의 기능과 역할을 적절히 활용하여 새로운 가극 형태를 창안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은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과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던 당대의 시대적 감정을 민중 정서에 맞게 담은 통속적인 절가 형식의 노래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혁명의 꽃씨앗을 뿌려 간다네>를 비롯하여 <리별의 시각은 다가오는데>, <뜨거운 내 사랑이 너를 지키리>, <검은 구름 몰려오고 번개 치는데>, <하늘중천 밝은 달은 하나이건만>, <고향 떠나 칠백리>, <사랑하는 오빠와 우리 삼형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없고> 등은 그 좋은 예이다. 특히 주제가 <꽃 파는 처녀>는 민족적이면서도 철학적 깊이가 있는 명곡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작품 재창작과정에서 극의 구성 및 배역 선정부터 장면 하나, 극중 노래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관계자들을 지도하였다. 그는 작품에 나오는 80여 곡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모두 2천 700곡의 노래를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들은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불어 등 8개 국어로 번역돼 '명곡집', '선주곡집' '명곡해설집' 등의 이름으로 간행됐다.

3) <당의 참된 딸>(1971)
1971년 인민군협주단에 의해 창작, 공연되기 시작했다. 내용은 6·25전쟁 때 나이 어린 북한군 간호원강연옥이 갖은 고난과 시련을 뚫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다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는 것이며, 이는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은 다른 혁명가극과 달리 결말이 비극으로 맺어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절가와 방창, 입체식 무대미술과 무용으로써 탁월한 형상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가극에 나오는 노래는 혁명가요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시가요'로 분류되는데, '그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간호원의 생각은 깊어만 가네' '수혈의 노래' '오직 한길 당만을 위해 싸우렵니다' 등이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다. 또 이 작품은 방창 기능을 확대시켜 사상성을 높이고 있는데 특히 '간호원의 붉은 정성'은 관객들의 감성자극용으로 유명하다. 김정일의 지도 아래 창작됐고, '인민상'을 수상했다.

4) <금강산의 노래>(1973)
1973년 4월 김일성의 61회 생일을 기념해 만들어진 가극 작품으로 서장, 본장 7장, 종장으로 구성되었다. 일제 때 가난 때문에 생이별했던 황석민 일가가 우여곡절 끝에 사회주의 북한체제 하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특히 7장에서 금강마을 예술소조원들의 공연과 더불어 주인공이 20년만에 명희와 순이 등 처자를 상봉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주제가 <금강산의 노래>를 비롯한 노래들과 <사과 풍년> 등의 무용, 모란봉 극장 무대미술 등이 잘 어울렸다는 평가이다.

5) <밀림아 이야기하라>(1972)
1972년 평양예술단에서 창작·공연한 작품으로 일제시대에 구장을 지냈던 주인공 최병훈의 항일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을 김일성 찬양과 결부시킨 내용이다. 겉으로는 일제에 충성하는 개(狗)구장 노릇을 하며 속으로는 토벌대를 교란하고 김일성 부대에게 연락을 은밀히 취하여 유격전을 승리로 이끈다는 줄거리이다.

김일성에 의해 육성된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투철한 혁명정신과 영웅적 투쟁을 부각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제가 <설레이는 밀림아 이야기하라>를 비롯하여 <홀로 핀 진달래꽃> 등의 노래와 배합 관현악 연주, 무용, 무대미술 등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이다.

6)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4)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만들었다는 혁명연극을 1974년 함경남도 예술단에서 재창작한 혁명가극으로 7장과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주인공의 성격 발전에 절가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새로운 가극의 전형을 창조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작품의 주제적 요구와 주인공의 운명에 따라 움직이는 무대미술을 사용하여 입체성과 기동성을 살렸다.

또한 <꽃피는 이 봄날에> <가슴속에 지닌 꿈 언제면 피어나랴>, <우리는 세 친구 다정한 친구>, <다시는 집을 떠나 살지 말자고> 등의 노래들도 여러 장면들에서 불리면서 주인공과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었다.

7) 민족가극 <춘향전>
<춘향전>은 1988년 국립민족예술단(당시 평양예술단)이 창조공연한 민족가극. 극본은 조영출이 썼고, 노래 작곡은 집체작으로 되어 있으나 신영철이 대부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철은 이 공로로 지난 89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민족가극'이라는 민족적 형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는 작품을 창작하되, 고전을 재창작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장르이다. 고전의 재창작은 '현대적인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각색하되 빈부의 차이와 신분적인 귀천이 존재하는 낡은 착취사회 신분제도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보여주는 것'을 주된 원칙으로 삼고 있다.

서장, 종장, 전 7장 8경으로 구성되었다. 가극의 기본인 노래를 모두 절가화, 명곡화 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한 북한 식 민족가극이 되게 한 것이다. 특히 주제가인 <사랑가>와 3장 <이별가>, 6장 옥중장면 <유언가>는 가극에 대한 강한 인상과 깊은 여운을 안겨 주는 명곡이라 한다.

김일성은 민족가극 <춘향전>을 보고 미학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고전작품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춘향전>을 모델로 한 고전 현대화 정책에 따라 <심청전> <박씨부인전> 등도 재창작됐다. 이 작품은 첫 공연 이후 지금까지 북한 내에서만 400여 차례 공연되어 혁명가극과 함께 북한을 대표하는 공연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남북간 공연물 교류에도 앞으로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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