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북한 인권 운동 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최근 발간한 '북한 인권 사건 리포트' 1권에서 무고한 북한 주민을 죽이거나 고문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는 등의 반(反)인권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加害者) 14명의 실명과 나이, 소속 기관, 직급을 공개했다. 북의 인권 탄압 가해자 신상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이 책자는 "2009년 29세였던 함경북도 인민보안국 하사 채명일이 탈북했다 송환돼 노동형에 처해진 김련희를 작업 중 생옥수수를 먹었다는 이유로 마구 때려 숨지게 만들었다"고 밝히는 등 북의 인권 탄압 사례 24건을 소개하면서 확인된 가해자들을 공개했다.

구(舊)서독은 1961년부터 독일 통일 때까지 중앙기록보존소(잘츠기터·Salzgitter)를 통해 가해자 1만여명의 신상을 포함해 동독 인권침해 사례 4만1390건을 기록해 놓았다. 통일 후 동독 정권 사람들은 "냉전 시대 동독 국경수비대가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에게 총을 조준해야 할 때 잘츠기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며 "잘츠기터는 수감된 동독 정치범들을 고문에서 지켜주는 역할도 했다"고 증언했다. 서독이 동독의 정치 폭력 사례를 기록한 것만으로 동독에서 인권 탄압을 완화하는 효과를 냈다는 말이다.

우리도 북한 정권의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의 인권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록해 나가야 한다. 훗날 가해자를 처벌하고 보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선은 북한 김씨 세습 왕조가 자신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문서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회는 정부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두고 북의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기록·보존하도록 한 북한인권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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