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2부는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 대회에서 다른 참가자 700여명과 함께 한쪽 방향 4개 전(全) 차로를 불법 점거하고 연좌 농성을 벌여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김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민주노총은 2011년 8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서울역을 거쳐 용산구 남영 삼거리까지 3㎞를 편도 4개 차로 가운데 2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하겠다고 집회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4개 차로 전체를 점거해 1시간 동안 행진한 뒤 남영 삼거리 부근에서 40분간 연좌 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참가자들 가운데 전 금속노조 지부장 김씨를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했고 1심은 김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시위와 농성이 벌어진 때가 일요일 이른 시간이어서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집회 참가자들이 일시적으로 편도 4개 차로 전체를 점거했다고 해도 반대 방향 4개 차로는 비워둔 상태라 반대 방향의 통행에는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김씨 일행의 도로 행진은 오전 7~8시, 점거 농성은 오전 8시 10~50분에 이루어졌다. 아무리 일요일 아침 시간이라고 해도 한쪽 방향 4개 차로를 모두 점거해 1시간 동안 3㎞를 행진한 뒤 다시 40분간 연좌 농성을 벌였다면 그 도로는 1시간 40분 동안 마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교통량이 많지 않을 시간'이라는 추측을 근거로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한쪽 차도가 불법 시위로 막혔다고 해도 다른 쪽 차도는 통행이 가능했으니 교통방해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중앙선을 기준으로 한쪽 차도를 가던 차량은 다른 쪽 차도가 뚫려 있다고 해서 중앙선을 넘어 달릴 수는 없다. 그랬다간 교통사고가 날 게 뻔하다. 시위대에게 막힌 차들이 반대편 차도로 끼어드는 바람에 도심 도로가 차량들로 뒤엉켰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재판부는 시위대에게 막혀 옴짝달싹 못했던 운전자들의 심정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재판장인 박관근 부장판사는 지난달에도 북한에 몰래 들어가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조모씨에게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단순한 참배 행위는 망인(亡人)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 표현으로 애써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판결을 내렸다. 무죄 결론부터 내려놓고 무죄의 근거를 만들어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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