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前 통일원 차관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前 통일원 차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아사 사태가 20년 넘게 북녘 땅에서 벌어져 왔다. 천재지변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없다. 3대 세습 독재라는 인재(人災)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식량 배급에서 제외되는 적대 계층 주민들은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다. 그들 중 용기 있는 자들은 목숨을 건 고생 끝에 한국까지 온다. 그 숫자가 이미 2만5000명을 넘었다. 탈북자들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분단 68년간 남북 간 이질화를 해소하고 질서 있게 통일을 촉진해갈 첨병들이다.

지금도 한국 내 탈북자 한 사람이 북한에 남아 있는 20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남다른 가족애를 가진 탈북자들이 1가구당 500~5000달러를 연간 한두 번씩 북의 부모·형제에게 송금하고 있다. 이 돈은 중국 동포들의 중개로 거의 확실하게 전달된다고 한다. 햇볕정책 추진 당시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북한군이나 간부층의 배를 불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은 쉽지 않다. 과거 정부는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채택했다. 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탈북자가 하나원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는 순간 손에 받게 되는 지원금도 종전의 절반으로 줄여버렸다. 이유는 탈북자들이 의타적이기 때문에, 자립적 근로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초기 정착금을 줄이고, 대신 노력해서 적응한 경우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막상 그들이 하나원을 나올 때 중국 내 탈출을 도와준 '도우미'에 대한 수고료 200만~300만원을 주고 나면 손에 남는 현금은 달랑 200만~3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액수로 남한에 연고가 없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탈북자에 대한 지원금을 예전대로 원상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탈북자들의 조기 정착을 실질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런다고 모든 탈북자가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것은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탈북자 당사자와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인도적 지원이다. 북한 당국을 자극할까 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민을 먹여 살릴 기본적 의무마저 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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