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국립현충원은 지난 5일 국군 포로 손동식씨 유해 봉환(奉還) 행사를 가졌다. 육군 9사단 소속이었던 손씨는 28세였던 1953년 4월 공산군에게 붙잡혔다. 손씨는 그 후 30년 가까이 줄곧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폐암에 걸렸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인 1984년 1월 맏딸 명희씨를 불러 자신의 고향이 경남 김해라며 부모·형제 이름과 국군 군번 등을 알려줬다. 손씨는 "너만이라도 꼭 그곳으로 가라. 내 유해도 고향 땅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게 딸 명희씨의 증언이다.

명희씨는 2005년 북한을 빠져나와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명희씨는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고 싶다던 아버지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경비를 마련하며 8년을 기다린 끝에 최근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친·인척들을 접촉했다. 이들이 지난달 초 한밤중에 손씨의 무덤에서 유골을 수습해 배낭에 넣어 북한·중국 접경으로 나와 브로커에게 전달했다.

명희씨는 아버지가 북에 끌려간 지 60년 만에 유해를 모셔오는 과정에서 정부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의원) 등 민간단체 지원을 받았을 뿐이다.

북한은 그동안 "(북에 억류된) 국군 포로는 없다"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북의 주장은 1994년 국군 포로 조창호 소위가 생환(生還)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국군 포로 80여명이 자신 또는 가족의 힘만으로 귀환했다. 이번 손씨 유해 봉환도 딸 명희씨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온갖 고초를 겪은 군인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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