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계급에 따라서 대개 정해진 크기의 집에 삽니다.

일반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은 방 하나 부엌하나가 딸린 것으로 '하모니카 주택'이라고 불리지요..
(아래 사진 참고)
주택공급이 부족하여 집을 배정받을 때까지 다른 가구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경우('동거살이'라고 부릅니다)도 있고요..

물론 평양과 지방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평양에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으며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고급아파트거리들도 있거든요..

어떤 집에 가장 살고 싶어하는지를 물으셨는데, 북한주민들의 경우엔 집을 좀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집안의 살림살이를 마련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을 듯 합니다.

북한에서 집이란 돈을 모아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개념이 아닌, 국가에서 배정받는 것이니까요..
(원칙적으로 매매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사고파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장 호화로운 주택이야, 독립된 호화주택이겠고, 그 다음은 평양의 고급아파트가 되겠지요.

<북한의 주택 및 주거사정>

북한에서 주택은 국가에서 정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일괄적으로 공급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처럼 별도의 저축에 가입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청약할 필요도 없답니다. 그냥 신청서에 도장을 찍은 후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요.

대도시의 중간 간부급 이상의 주민들은 보통 방 2∼3칸짜리 아파트를, 일반 주민들은 방 1~2칸짜리 연립주택을, 그리고 농민들은 보통 방 1∼2칸의 농촌 단독주택을 배정받아 살고 있답니다.

북한 주민들은 계층과 신분에 따라 차별화되어 있는 각 등급의 독립 가옥이나 연립주택·아파트 등을 임대형식으로 할당받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전기세, 물세, 관리비 등은 집의 크기에 따라 달리 내야 합니다. 이를 '주택 사용료'라고 부르는데 북한 당국은 노동자나 사무원들이 사용하는 주택의 사용료는 생활비 지출액의 0.3% 수준이며 연료비 및 기타 사용료를 포함해도 세대당 생계비의 3% 내외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은 경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경우이고 요사이처럼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답니다.

북한의 주택사정은 상당히 어려운 편입니다. 신혼부부의 경우 4∼5년 정도 기다려야 주택을 배정받을 수 있는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어려워 한 주택에 2가구가 같이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가까운 장래에 살집을 배정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며, 때로는 각 직장이나 협동농장에서 집단으로 주택을 건설해주어 주택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답니다.

주택의 난방 및 취사연료는 대부분 구멍탄, 갈탄, 목재, 농작폐기물, 열진(가루로 된 석탄) 등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석유나 가스연료, 인근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열을 사용하는 난방은 대도시의 고층아파트나 중소도시의 일부 아파트에서만 사용됩니다. 전기와 수돗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단전·단수가 자주 일어나고, 지방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경우 아예 온수관 자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종종 아파트를 '닭장'에 비유하듯이, 북한주민들도 공동주택을 '하모니카집' 또는 '토끼집'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광복거리 전경, 1989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김 주석의 80회 생일(1992.4.15)을 맞아 3만 가구의 아파트가 새롭게 건설됐다.새로 건설된 아파트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은 평양 중심부 고려호텔 주변의 창광아파트다. 이곳에는 보통 중앙당 고위간부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방이 3개 이상 되고 주방용품도 대부분 수입품을 쓰고 있다.북한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하여 평양에 1981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10만여 가구의 주택을 문수·창광·광복·통일·안상택 거리 등에 건설하였으나, 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광복거리 전경, 1989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김 주석의 80회 생일(1992.4.15)을 맞아 3만 가구의 아파트가 새롭게 건설됐다.새로 건설된 아파트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은 평양 중심부 고려호텔 주변의 창광아파트다. 이곳에는 보통 중앙당 고위간부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방이 3개 이상 되고 주방용품도 대부분 수입품을 쓰고 있다.북한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하여 평양에 1981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10만여 가구의 주택을 문수·창광·광복·통일·안상택 거리 등에 건설하였으나, 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방1에 부엌1이 딸린 일반 주민들의 집으로 '하모니카 주택'이라 불린다.일반 주민들의 경우 방 1개, 부엌 1개의 2칸 주택이 보통이고, 방 2개, 부엌 1개의 3칸 주택에 2가구가 동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방1에 부엌1이 딸린 일반 주민들의 집으로 '하모니카 주택'이라 불린다.일반 주민들의 경우 방 1개, 부엌 1개의 2칸 주택이 보통이고, 방 2개, 부엌 1개의 3칸 주택에 2가구가 동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평양 외곽의 주택가한편 원산·함흥·청진 등 지방도시에도 평양과 같은 시기에 3000여 가구의 아파트·공동주택이 건설되었으나, 공급부족 현상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주택은 당·기관·기업소 등의 간부들에 우선적으로 배정되어 일반주민들의 주택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평양 외곽의 주택가한편 원산·함흥·청진 등 지방도시에도 평양과 같은 시기에 3000여 가구의 아파트·공동주택이 건설되었으나, 공급부족 현상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주택은 당·기관·기업소 등의 간부들에 우선적으로 배정되어 일반주민들의 주택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농촌에 건설된 개량식주택이와 같이 아직도 주택사정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주택건설계획도 많은 차질을 빚고 있는 이유는 북한이 현재 주택 문제보다는 먹는 문제, 입는 문제의 해결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농촌에 건설된 개량식주택이와 같이 아직도 주택사정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주택건설계획도 많은 차질을 빚고 있는 이유는 북한이 현재 주택 문제보다는 먹는 문제, 입는 문제의 해결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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