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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식 칼럼] 북한에 대한 알 수 없는 대범함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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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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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두식 논설위원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초강력 기업 규제법 내놓고 후쿠시마에 놀라 생선 기피
이보다 몇 천 배 더 위험한 北 화학무기·핵시설엔 무감각…
김정은의 행태에 눈이 가려 북한 실체 놓쳐선 안 돼


늘 굼떠 보이는 국회가 기민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면서, 여야가 마음 놓고 포퓰리즘 경쟁을 벌여도 손해 볼 일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국회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인다. 올 상반기에 터진 '을(乙)의 분노'가 여기에 딱 맞아떨어졌다. 정치권은 정말 요란하고 신속하게 이 문제를 다뤄 왔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유해 화학물질 관리법'도 비슷한 경우다. 작년 9월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폭발에 이어 지난 1월 삼상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터졌다. 대기업 공장에서 화학물질 사고가 끊이지 않은 것은 큰 문제이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징벌 수위를 끌어올려 기업들이 스스로 조심하도록 하겠다며,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산술적으로 국내 사업장의 연간 매출이 20조원 이상인 반도체 업체는 단 한 건의 유출 사고에 1조원의 과징금을 낼 수도 있다. 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원안(原案)은 매출액 10%까지 과징금을 매기도록 했으나 법사위에서 과징금 상한선을 절반으로 깎아준 게 이렇다.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자, 결국 정부·여당이 수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불산 사고로부터 넉 달 만에 규제 법안을 만들더니, 그로부터 넉 달 만에 다시 법을 고치겠다고 나선 꼴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의 화학물질 유출 사고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이상 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눈감고 있다. 다름 아닌 북한 화학무기다. 북한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이다. 북한은 핵 개발이 쉽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부터 김정은의 조부(祖父) 김일성의 명령으로 화학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 국방백서는 북한의 화학무기 규모를 2500~5000t으로 추정했다. 최소치와 최대치에서 두 배 차이가 난다. 정확한 실태를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기업의 안전 관리 소홀 가능성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가해올지 모르는 북한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대범하다.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原電)에서 바다로 흘러나오는 방사능 오염수에 민감하다. 생명·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일본 아베 내각의 미덥지 못한 대처와 설명이 불신을 더 키웠다. 덩달아 국내 수산업계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영변에 짓는 100MW급 경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조악한 원전이다. 북한은 최근 이미 사용연한이 지났어도 한참 지난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영변은 서울에서 27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후쿠시마는 서울에서 1200여㎞ 떨어져 있고, 여기서 나온 오염수는 해류의 흐름상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한반도로 온다. 우리는 후쿠시마 때문에 생선 먹기를 삼가면서 정작 우리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한발(發) 재앙의 가능성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최근 국내 언론에 비친 김정은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다. 뜬금없이 스키장 건설에 열을 올리면서 놀이기구를 즐기고, 기행(奇行)을 일삼던 전직 미국 프로농구 선수와 친구가 됐다. 최근 지구촌 최고의 악당으로 떠오르는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역시 지난 2000년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직을 세습할 때만 해도 유약하고 엉뚱한 인물로 평가됐다. 그는 형이 교통사고로 죽지만 않았다면 안과 의사가 됐을 것이다. 그는 대중 연설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심했고, 영국 유학 후 나중에 패션 전문지에도 등장한 영국계 시리아인과 결혼했다. 세계 어느 정보기관도 28세에 후계자로 지목된 그가 훗날 민간인 거주 지역에 화학무기 로켓을 쏴 1500명을 살상하고, 10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내전(內戰)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화학무기 사용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중대 범죄다. 그러나 아사드는 미국의 유약함과 러시아의 비호 속에서 별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 같다. 김정은은 이 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29세의 김정은은 핵·화학무기·미사일이라는 3종(種) 대량살상무기 세트를 손에 쥐고 있다. 김정은은 올 들어 도발과 대화 카드를 번갈아 꺼내들었다. 김정은의 행태가 엉뚱하다고 해서 그를 앞세운 북한까지 우습게 볼 수는 없다. 우리 기분에 취해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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