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통일부 장관 인터뷰]

核·경제 병진정책 양립못해… 北이 고수땐 경제협력 못해
개성공단 정상화는 진행… 남북간 여러 사안과 연계 안할것
이젠 통일문제 돌아보고 통일 친화적 사회 만들어 나가야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켜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류길재 장관은 23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데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류 장관은 이날 1시간 15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이 워낙 가변적이고 불안정해서 취임 7개월 동안 하루도 안심한 날이 없었다"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당당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맷집을 키우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류 장관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내세운 핵무력·경제개발 병진(竝進)정책에 대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며 "북한이 병진정책을 계속하는 한 남한의 경제협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로 무산됐는데.

"북한이 숙소 얘기를 분명하게 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산가족 상봉 연기의) 암운(暗雲)이랄까, 전조(前兆)였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여러 가지 상봉 연기 이유를 댔지만 어느 것 하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北의 선의와 아량 때문에 남북관계 진전됐다는 말 가장 듣기 싫어'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3일 본지 인터뷰에서“지금은 북한이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자신들의‘선의와 아량’때문에 남북관계가 진전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북한이 하는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北의 선의와 아량 때문에 남북관계 진전됐다는 말 가장 듣기 싫어'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3일 본지 인터뷰에서“지금은 북한이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자신들의‘선의와 아량’때문에 남북관계가 진전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북한이 하는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북한이 상봉 무산 이유 중 하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거론했는데.

"이 의원 사건은 우리 정부가 수사 중인 사안이다. 북한이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상호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초보적인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정부와 진정성 있는 대화는 어렵다."

―개성공단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북한이 억지를 부리고 나왔는데 이로 인한 영향은.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약속한 것은 모두 지킨다. 8·14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는 그대로 이행한다. 남북관계에 여러 가지 사안이 있는데 이를 모두 다 연계시켜서는 곤란하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와도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다. 현금 대신 현물을 주는 방안도 제시됐는데.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현물을 주는 방안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제기됐었다. (현물을 주는 방안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6자회담 재개를 언급했는데, 재개할 만한 때가 됐다고 보나.

"북한의 비핵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당위의 문제다. 6자회담은 과거에 여러 번 열렸고 합의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합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행이 중요하다. 지난해 북한은 미국과의 '2·29 합의'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최소한 2·29 합의를 이행하는 정도는 해줘야 미국이든 한국이든 회담에 가는 의의가 있지 않겠나. 북한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

―북한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고 모색해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의 '병진정책'을 평가한다면?

"1960년대 김일성도 국방과 경제 병진노선을 했지만 실패했다. 국방 분야에 대한 투자와 경제 분야에 대한 투자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이 미망(迷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핵·경제 병진노선이 아니라 '비핵(非核)·경제' 노선으로 하루빨리 전환하는 것이 북한이 살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표 중 하나가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이 과거와 다른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통일이 예전에는 당위의 문제였는데 언젠가부터 마치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통일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를 얘기하는 대상이 됐다. 그걸 넘어서 아예 관심이 없고 비판적인 분위기도 있다. 이젠 통일 문제 돌아보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

―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정치적으로 한 나라가 되는 큰 통일만 통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이 평화 공존하는)'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간다는 방침이다. 통일 준비의 핵심은 '통일 친화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를 공동체적인 사회, 정(情)의 문화를 복원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류 장관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북한이 그간 남북관계 진전을 자신들의 '선의와 아량'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말한 데 대해 "북한이 하는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표현"이라고 했다. 류 장관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북한이 베푸는 시혜의 대상이란 뜻인데, 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북한이 (당국 간 협상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당국 간에는 정부의 이익을 갖고 합리적인 얘기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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