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돌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1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를 희망하던 한 할머니가 적십자사 관계자에게 언제쯤 상봉 행사가 또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돌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1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를 희망하던 한 할머니가 적십자사 관계자에게 언제쯤 상봉 행사가 또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뉴시스

3년 전에도 막판에 취소… 번번이 만남 무산돼 실망 커"
"북한은 가족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이용" 분통 터뜨려
91세 이산가족 추석날 숨져… 남쪽 참가자 수 95명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21일 북한이 돌연 행사 연기를 통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상봉 행사를 준비해온 이산가족들은 충격을 받으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상봉을 기다려온 고령자들의 실망감이 더욱 컸다.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21일 북한이 돌연 행사 연기를 통보했다는 소식에 문정아(여·86)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함남 영흥이 고향인 문씨는 1·4 후퇴 때 헤어진 여동생 두 명을 62년 만에 만날 예정이었다. 문씨는 "북한은 전쟁도 일방적으로 일으키고, 뭐든지 했다 하면 일방적"이라며 "생사도 모르고 지내던 동생들을 죽기 전에 만나보나 했는데 온몸에 힘이 빠져 말할 기력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한정화(여·87)씨도 날벼락 같은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씨의 아들 김희욱(50)씨는 "함경도에 살던 어머니는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고 당시 다섯 살이던 큰아들을 고모에게 맡기고 아버지와 피란 왔다가 이산가족이 됐다"며 "아들을 보고 죽을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면서 한복도 새로 맞추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는데 너무나 허탈해하신다"고 말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된 임태호(70)씨는 "북한은 우리나라가 햇볕정책 하던 시절부터 하도 말을 뒤집어 어떤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임씨는 "아버지의 생사를 60년 동안이나 모르다가, 최근에야 북한에 이복동생 2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이번에 만나기로 했다"며 "아버지 기일과 장지도 물어봐야 하고, 만나서 할 말이 정말 많은데 속만 터진다"고 했다.

이근수(83)씨는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 '북(北), 이산가족 상봉행사 연기'라는 기가 막히는 자막이 뜨길래 대한적십자사에 물어봤더니 북한의 발표 내용을 확인 중이라는 답만 들었다"며 "여동생을 만날 생각에 명절도 방북 준비로 바쁘게 보냈는데 할 말이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60년 만에 동생을 만날 예정이었던 김명도(90)씨는 "북한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자기네 체제 유지에 도움이 안 된다 싶으니까 바로 취소한 것"이라며 "불과 나흘 남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이 그리운 이산가족의 마음마저 이용하는 건 정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카딸 두 명을 만나기로 했던 마수일(82)씨는 "1·4 후퇴 때 헤어진 여동생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진은 있는지 조카딸들에게 물어볼 것이 정말 많다"며 "북한 놈들이 제멋대로 연기했는데, 뭐라 말을 못 할 정도로 화가 나고, 이렇게 마음대로 취소하는 건 정말 만행"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세 살 아래 여동생을 만날 계획이던 홍신자(여·83)씨는 "연기하겠다는 건 안 하겠다는 말과 내겐 다를 게 없다"며 "이제 나이도 많고, 다음 기회도 없을 텐데 그저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3년 전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들었다가 막판에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언니(86)를 만나지 못한 김순연(여·79)씨는 "3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마지막에 번번이 만남이 무산돼 너무 실망스럽다"면서 "이번 기회가 이렇게 끝나고, 내가 곧 죽게 되더라도 우리나라가 통일이 돼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남쪽 참가자로 확정된 김영준(91)씨가 추석인 지난 19일 오후 6시 56분쯤 부천 원미구 원미동 자택에서 숨졌다.

김씨는 이날 갑자기 맥박이 심하게 떨어지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장마비로 숨졌다. 김씨는 이번 행사에서 북한에 있는 딸과 누나, 남동생 등을 만날 예정이었다. 평양이 고향인 김씨는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뒤 남한에 정착했다고 한다.김씨의 사망으로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남쪽 참가자 수는 96명에서 95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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