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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평양에 울려 퍼진 애국가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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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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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평양 고려호텔에 시인 고은, 평론가 백낙청을 비롯한 우리 문인 아흔여덟 명이 들어섰다. 북한 조선작가동맹과 함께 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한 뒤였다. 문인들은 호텔에 돌아와선 밖에 나가지 못했다. 각자 방에 있던 문인들이 깊은 밤 하나둘 호텔 로비 맥줏집에 모여들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돌아가면서 노래 한 곡씩 불렀다.

▶불콰해진 김훈은 비감한 표정으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 젖혔다.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6·25 때 납북 인사들의 고난을 애절하게 담은 노래가 평양 한복판에 울렸다. 노래를 듣던 문인들 낯빛이 하얘졌다. 로비 한쪽 구석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북한 안내원 눈치를 힐끔힐끔 봤다. 다행히 안내원들이 노랫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에서 우리 노래는 당연히 금지곡이다. 3년 전 북한 대학생들이 안재욱의 '친구'를 합창했다가 보위부에 끌려갔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졌다. 북한 중앙TV 아나운서가 앙칼진 목소리로 '남조선 괴뢰정권'이라 부르는 나라의 국가가 울려 퍼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제 평양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 클럽역도대회에서 애국가가 처음 연주됐다. 두 한국 선수가 85㎏급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뒤 열린 시상식에서였다. 태극기가 올라갔고 CD에 담아 간 애국가가 울렸다.

▶우리 정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부터 인공기 게양과 북한 국가 연주를 허용했다. 2005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그랬다. 반면 북한은 스포츠 행사에서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했다. 2008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남북한이 평양에서 맞붙게 됐다. 북한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올리고 애국가 아닌 아리랑을 연주하자고 했다. 우리 축구협회는 FIFA 규정을 내밀며 북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홈경기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고집을 부렸고 남북한은 상하이에서 경기를 치렀다.

▶북한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한 배경엔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작년 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맡은 뒤 국기와 국가에 대한 국제 스포츠 기준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한다. 애국가가 울리고 태극기가 올라갈 때 북한 관중이 모두 일어선 것도 보지 못했던 일이다. 스포츠는 종종 정치와 이념의 장벽을 뚫는 역할을 해 왔다. 평양 체육관에 처음 울린 애국가가 남북한 관계가 풀리는 첫 음(音)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바란다.
 
   
▲ 지난 14일 태극기가 사상 최초로 북한 땅에서 게양됐다.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컵역도선수권대회 남자 주니어부 85㎏급에서 김우식·이영균 선수가 금·은메달을 차지하자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북한 관중들도 일어서서 시상식을 지켜봤다./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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