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38노스'는 12일 최근 북한의 영변 핵 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원자로 인근 건물에서 흰색 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관측됐으며 증기의 색깔과 양으로 볼 때 원자로를 재가동했거나 거의 그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 활동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들을 재처리해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만들었고, 2006년과 2009년에 실시된 1·2차 핵실험을 여기서 나온 플루토늄으로 했다. 영변 원자로 재가동은 북한이 과거부터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 할 때마다 상용해 온 수법이다. 북한은 지난 4월에도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공개 거론했었다. 따라서 북한이 5MW 원자로를 다시 돌린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6자회담에서 나온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는 북한이 5MW 원자로를 비롯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두는 것을 약속하고, 한·미는 그 대가로 경수로 원전과 중유·식량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북한은 수십만t의 식량과 중유를 받고 나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는 식의 트집을 잡아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이렇게 하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직접 '6자회담 조기 재개(再開)'를 요구했는데도 북한이 과거 몇 차례의 합의·공동성명에서 약속한 5MW 원자로 가동 중단 및 봉인 조치를 먼저 취하지 않는 한 6자회담을 열 수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미국은 현재 시리아 등 중동 문제 때문에 북한과 핵 협상을 서두를 생각이 별로 없다. 북이 핵 위협 카드를 꺼내 들면 미국은 과거처럼 북한과 협상에 나서는 게 아니라 대북 제재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당분간 북한과의 대화를 주선하기 어렵다고 보고 대북 제재 쪽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은 5MW 원자로에 다시 손을 댔다가는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과의 대화가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등을 돌리게 해 결국 제 발등만 찍을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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